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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산업기술의 전도사' 우리미디어 황흥선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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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산업기술의 전도사' 우리미디어 황흥선 소장

입력
2010.05.2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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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은 산업의 산소 같은 존재입니다. 산소가 부족하면 누구도 생존할 수 없죠. 제 특강을 들은 학생 중 1,2명만 명장이 되도 우리의 30년 후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겁니다."

황흥선(51) 우리미디어 기술문화경영연구소장의 이름 앞에는 늘 '대한민국 명장' '최고기술경영인'(CTO) '산업현장 신지식인'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최근에는 '산업기술교육의 전도사'라는 이름이 가장 어울린다. 교육 및 홍보영상 제작사인 우리미디어의 공학교육 콘텐츠를 담당하고 있는 그는 사실 주중에는 중소기업과 대학에서 각종 기술경영컨설팅과 특강을 하고, 주말이면 산간벽지의 초ㆍ중ㆍ고를 찾아 청소년 진로 지도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강의를 들어본 사람들의 추천으로 다시 특강에 나서는 일이 많은 데다 산간벽지 학교 교사들이 부탁하면 먼 길도 마다 않고 방문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그다. 공고 출신 기술자가 대학 명강사가 되기까지 겪은 이야기를 듣게 된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진다. 때문에 그는 "스타도 아닌데 사인 요청을 받거나 함께 사진 찍기를 부탁 받는 일"이 잦다.

사실 황 소장은 반항심 많은 꼴찌 공고생이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대학에 진학해 공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접어야만 했던 그는 반항심 때문에 공부는 뒤로한 채 친구들과 어울리며 세월을 보냈다. 그때 황 소장에게 반전의 계기가 찾아왔다. 삼성그룹 고졸 공채 1기로 같은 학교에서 지원한 학생 10명 중 유일하게 입사시험을 통과하게 된 것이다.

1977년 삼성정밀공업(현 삼성테크윈)에서 일하게 된 그는 기계 제도반의 막내로 일하며 청소와 도면 복사 등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일이었지만 그는 불평 한마디 없이 그 일을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도면 복사 심부름을 맡으면 2장을 복사해 간직했다 퇴근 후 꼼꼼히 분석하며 스스로 기술을 익혔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헌책방 골목을 뒤져 일본어로 된 참고서를 찾아 읽었고, 주말이면 다른 지역 기술자를 찾아 가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곧 회사의 보배가 됐다. 적외선 야시경, 로켓포, 카메라 금형 등 각종 부품의 국산화를 이끌었고, 1만5,000건에 이르는 품질ㆍ공정 개선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특히 1994년에는 카메라조립 담당자로 부임해 작업 현장 개선에 나섰는데, 기계와 생산 공정을 혁신해 호평을 받았다. 그는 "관리자로 부임한지 5년 만에 현장 근로자들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며 "야근 없어지고 잔업 줄여주니 노동자들이 스스로 관리자에게 상을 주는 일도 생겼다"고 회상했다.

2004년부터 개인적 기술을 닦는 것보다 후진을 양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 특강을 하게 된 그는 기술 교육이 제자리를 찾고 기술자가 제대로 대접 받는 세상을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칠 생각이다. 황 소장은 "학생들이 명장을 꿈 꾸고, 실제로 명장이 존경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강희경기자 k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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