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남미… 시선을 빨아들이는 승부사의 브랜드
13일(한국시간) 독일 함부르크 노드뱅크 아레나 경기장에서 열린 2009-2010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진풍경이 연출됐다. 결승전에 나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풀럼 선수들이 모두 우리나라 기업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뛴 것.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2005년부터 기아차의 후원을, 풀럼은 2007년부터 LG전자의 협찬을 받아온 터였다. 삼성전자가 후원하는 첼시가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2007-2008)에 오른 적은 있지만 유럽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를 통틀어서 결승전에서 한국기업이 후원하는 두 팀이 맞붙기는 처음이다.
이날 경기 결과 유로파리그 우승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돌아갔다. 기아차의 해외 스포츠 마케팅이 빛이 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LG전자도 아쉬울 게 없었다. 그 동안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중위권에 머물던 풀럼은 이번 시즌 동안 강호팀인 이탈리아의 유벤투스, 독일의 함부르크 등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파란을 일으켰다. LG전자는 결승 진출에 성공한 풀럼을 통해 이미 기대 이상의 효과를 톡톡히 거뒀다. LG전자 관계자는 "풀럼 후원으로 연간 600억원 정도의 홍보 효과를 보고 있는데, 올해는 유로파리그 결승까지 오르면서 홍보 효과가 700억~8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 유명 스포츠 구단의 든든한 후원자로 각광받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우리 대표 기업의 실적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회복되자, 해외 유명 스포츠 구단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는 것.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이젠 해외 스포츠 마케팅에서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상황이 변하며 최근 우리 기업들은 골라가며 스포츠 구단을 후원하고 있다. LG전자가 런던의 부자 동네를 기반으로 하는 풀럼을 후원하고 있는 것도 LG전자가 지향하고 있는 프리미엄 이미지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이 팀의 구단주는 명품 백화점인 해롯 백화점의 소유주인 알 파예드 회장이다. LG전자는 이 백화점에 명품 전시관을 열고 LCD TV를 비롯한 최첨단 고가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알 파예드 회장과 LG전자의 파트너십, 고급 가전제품의 이미지와 스포츠 마케팅이 절묘하게 만나는 지점에 서 있는 것.
LG전자가 2008년부터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원(F1)의 글로벌 파트너로 나선 것도 전략적인 선택이다. F1은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대회로 꼽힌다. 10월 전남 영암에서 F1이 열리면 180여개국 200여 방송사를 통해서 LG의 로고가 6억명 이상에게 노출될 것이라는 게 LG전자 설명이다.
또 지난 3월 미국에서 열린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농구 결승전을 3차원(3D) TV로 생중계하고, 2008년부터 국제 스노보드 월드컵을 후원하는 것도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각인시키려는 의도이다.
삼성전자가 2005년부터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첼시를 후원하고 있는 것도 효과를 극대화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팀이란 첼시의 명성은 자연스레 전자업계 최고의 기업으로 삼성전자를 떠 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첼시의 푸른색 상징도 삼성전자 기업 로고 바탕색과 일치했다. 첼시는 이번 시즌 우승까지 차지, 광고 효과가 최소 1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러한 스포츠 마케팅의 힘은 2004년 17조8,371억원 수준이던 삼성전자의 유럽 매출을 지난해 36조1,830억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삼성의 스포츠 마케팅은 이제 유럽을 넘어 미국,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까지 넘나들고 있다. 미국 자동차경주대회인 '나스카', 브라질 프로축구단 '팔메이라스', 아프리카 국가대항전 '네이션스컵'에 공식 후원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 모두 삼성이 신성장시장으로 집중 공략하고 있는 지역이다.
또 기아차가 세계 4대 그랜드슬램대회 중 하나인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와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의 프로축구팀을 후원하고 있는 것도 이 지역의 자동차 시장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한편 인터넷 기업인 넥슨이 올해 지바 롯데 마린스와 공식 후원사 계약을 체결한 것도 주목된다. 넥슨은 이번 계약을 통해 일본 서비스 중인 자사의 온라인 게임 내에 지바 롯데 마린스 관련 게임 아이템 추가 등 다양한 프로모션으로 일본 시장 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후원을 시작한 첫 해부터 지바 롯데는 퍼시픽리그 1,2위를 달리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중들은 스포츠 스타의 정직한 땀에 열광하고, 기업들은 이런 스포츠가 가진 몰입력을 활용해 시장을 넓히기 위해서 스포츠 구단을 후원한다"며 "예전에는 우리가 먼저 제의해도 거들떠도 보지 않던 스포츠 구단들이 최근에는 먼저 후원을 하지 않겠냐며 제안해 오는 등 달라진 한국 기업의 위상을 스포츠 마케팅에서도 실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희경기자 kstar@hk.co.kr
■ 스포츠 마케팅 효과는?
스포츠 마케팅으로 기업들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얼마나 될까.
기업들이 마케팅을 통해 거두는 성과를 정확히 분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기업 브랜드 및 로고의 매체(방송, 신문, 잡지) 노출 시간, 각 국가의 광고비, 시청자 수 등 다양한 요소들을 모두 고려 해야 하는 만큼 계산이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투자 대비 효과가 크다는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업계에따르면 2002년 월드컵 공식 후원사로 참여한 현대차는 대회를 통해서 70억달러(한화 8조4,000억원)의 광고 효과를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현대차가 후원비로 1,000억원을 지출한 것을 감안하면 무려 84배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이와는 별도로 당시 현대차는 국내에서 6조2,200억원의 홍보 효과를 추가로 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2006년 월드컵은 이전 월드컵보다 30% 가량 시청자의 수가 증가, 2002년에 거둔 성과 이상의 효과를 달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의 국제 스포츠 마케팅은 투자 대비 남는 장사라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삼성이 브랜드가치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국내 기업에서, 세계 20위 안에 드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도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후원과 함께 스포츠 마케팅에 적극 나선 것이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분석이 적잖다.
현대ㆍ기아차가 1초당 광고비가 10만달러에 육박하는 슈퍼볼 광고에 3년째 참가하고 있는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따라 다음달 열리는 월드컵이 국내 광고 시장을 들썩이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6월의 광고경기 예측지수는 125.2로 전달에 비해 크게 호전됐다. 보통 6월은 기업들이 다소 소극적으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는 시기지만, 올해는 월드컵을 앞두고 있어 광고특수 효과가 크게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이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간 벽이 점점 더 허물어지고 상품 주기가 짧아지며 제품 홍보보단 기업 브랜드 제고의 필요성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며 "감성에 호소할 수 있고 투자 대비 효과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기업의 스포츠 마케팅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희경기자 k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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