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장기표의 나의 꿈 나의 도전] <45> 교도관의 도움 받아 '사랑론' 집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장기표의 나의 꿈 나의 도전] <45> 교도관의 도움 받아 '사랑론' 집필

입력
2010.05.23 12:38
0 0

지난 1991년 가을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을 만났더니 "그 동안 쓴 글들이 많을 테니 책을 한번 내보라"고 말했다. 글을 쓴 일은 있지만 책을 내려고 쓴 일이 없어 "책으로 낼 글이 없다"고 말했더니, "그렇더라도 그 동안 쓴 글을 한번 모아 보라"고 했다. 그래서 낸 책이 (전 8권)이다.

그런데 이 저작집을 내면서 김 사장이 "그 동안 해 온 일들을 글로 써서 이 저작집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해서 이에 선뜻 동의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 동안 해 온 일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아 그 동안 해 온 일들을 생각해보니 글로 쓸 수 있는 게 거의 하나도 없었다. 내가 해 온 일을 쓴다면 민주화 투쟁과 관련한 집회와 시위를 기획하거나 조직한 일, 수사기관에서 수사관들을 교묘히 속인 일, 그리고 교도소에서 교도관들 몰래 민주화 투쟁과 관련한 글을 써서 밖으로 내보낸 일 등이 주된 내용일 텐데, 이러한 것을 쓰는 것은 옳지 않아 보였다. 민주화 투쟁과 관련한 일을 쓰자니 내가 민주화 투쟁을 다 한 듯이 보일 것 같아 쓸 수가 없었고, 수사기관이나 교도소에서의 일도 그렇게 한 것으로 끝낼 일이지 그것을 자랑 삼아 말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수사관이나 교도관들이 무능해서 나에게 속은 게 아니라 나의 인간성이나 주장에 상당 정도 공감해서 넘겨버린 것도 더러 있을 텐데, 그것을 무용담 삼아 말한다면 그것은 그들에 대한 배신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러한 일들을 좀 쓰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우선 시간이 많이 흘러 관계자에게 누가 될 일이 거의 없어졌고, 또 그 일들이 당시의 시대상황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겠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나는 서울구치소 병사에 있었는데, 나 때문에 담당 한 명이 특별히 배치되어 있었다. 마침 이 담당이 정의감도 있고 정치적 감각도 뛰어나 나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한 것은 물론 나를 돕고 싶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꼭 쓰고 싶은 글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고 다른 하나는 다. 는 법원에 제출할 에서 쓰면 되지만 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몰래 좀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대단히 어려운 요청이었는데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지금은 재소자들에게 필기도구를 허용하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는 엄격히 금지됐다. 담당이 공안사범에게 필기도구를 주어 글을 쓰게 한 게 발각된다면 파면을 넘어 구속이 되고도 남았다. 물론 담당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할 생각이었으나 그 생각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을 쓸 수 있었다. 나를 감시하라고 특별히 배치해 둔 담당 덕분에 교도소에서는 정말 하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었다. 서울구치소 입장에서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었다.

담당 근무자의 묵인 하에 글을 썼지만 글쓰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본무담당이 근무하고 있는데다 소제와 지도 등이 수시로 내 방 앞을 지나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처럼 하면서 책 밑에 손을 넣어 글씨를 보지 않은 채 글을 썼다. 그리고 밤에는 이불 속에 손을 넣고 글을 쓰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을 완성해서 이 담당을 통해 아내 조무하에게 전했다. 그래서 1988년 내가 교도소에 있을 때 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는데, 책의 내용보다 책의 제목이 그럴 듯해서였는지 운동권 젊은이들의 필독서처럼 됐고 젊은 연인들이 선물하는데 많이 이용됐다. 특히 사랑을 고백할 때 이 책을 전한 일이 많았다고 한다. 지난 5월 14일 '5ㆍ18 민중항쟁 3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의 뒤풀이 마당에서 민중가수 손모 씨가 내 자리에 찾아와 "나는 를 나에게 선물한 사람과 결혼했다"고 말하는 걸 듣고서, 이 책이 중신아비 역할도 했구나 싶었다.

이 책은 사랑의 전형인 부부사랑을 다루고 있으나, 나의 정치철학을 담고 있다. 나는 '정치는 사랑의 사회적 실천이자 사회적 실현'이기에 '정치는 사랑이다'고 생각한다. 진실로 내 부모 형제와 처자, 그리고 인간을 사랑한다면 정치를 통해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논어정독'의 저자 부남철 교수에 의하면 공자에게 있어 '정치는 인(仁)을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이기 때문에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앞에서 밝힌 대로 나는 군사독재정권?폭력적 탄압의 정당화 수단일 뿐인 재판을 거부했다. 그러나 공개된 법정에서 재판을 거부하는 이유를 밝힐 필요가 있어 1차 공판의 모두 진술에서 "나는 오늘 재판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군사독재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사법부를 심판하러 왔다"고 말하고는 재판을 거부하는 이유를 무려 2시간여에 걸쳐 밝혔다. 이 과정에서 재판장이 여러 차례 내 발언을 중단시켰고, 유가협과 민가협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이에 거세게 항의하다 7명이나 법정소란으로 구류를 살기도 했다.

그런데 1차 공판에서 재판을 거부한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에 더 이상 법정에 출석하지 않으려 했으나 법원에서는 기어이 나를 출석하도록 했고, 교도관들은 나를 출석시키기 위해 엄청난 병력을 동원했다. 나를 법정으로 끌고 가기 위해 서울 구치소의 비번 근무자 약 3분의 1을 동원했다고 하니, 나의 저항이 얼마나 완강했던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다친 교도관도 많았다.

그런데 나는 재판을 거부하는 대신 '자술서'라는 형식의 글을 통해 민주화 운동의 정당성을 밝힐 뿐만 아니라 평소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썼는데, 이 자술서가 엄청난 문제를 야기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