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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 '유치원 평가' 누굴 위한 평가인가

입력
2010.05.2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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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A유치원 교사 박민정(26)씨는 요즘 밤을 꼬박 새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올해 처음 시행될 유치원 평가 준비 때문이다. 매일 3쪽 이상의 일일 교육 계획서를 작성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업, 견학, 행사 등을 할 때마다 일정한 양식의 서류로 기록을 반드시 남겨야 한다. 평가 준비에 매달리느라 수업 준비는 뒷전이다.

부산 B유치원 교사 김지선(30)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씨는 "보여주기 위한 평가 때문에 아이들 교육이 자꾸 소홀해지고 있다"며 "이런 평가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 시도교육청이 이달부터 시작한 유치원 평가 현장 실사를 앞두고 일선 유치원들이 아우성이다. 평가를 위한 준비에 막대한 시간을 쓰고 있지만, 정작 평가 방식은 겉핥기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유아교육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전국 사립유치원을 대상으로 운영 실태를 평가키로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달부터 11월까지 705개 사립유치원을 대상으로 현장 실사를 하게되며, 나머지 시도교육청은 10월과 11월 두 달간 실사를 끝낼 계획이다. 교육청별로 다소 다르지만 교과부가 제시한 교육과정, 교육환경, 운영관리 등이 주요 평가 항목이며, 종일반 운영 여부 등도 평가 기준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문제는 평가 준비 때문에 유치원생 교육이 파행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당수 유치원들은 지난달부터 온통 평가에 필요한 서류 준비 등에 매달리고 있다. 교사 경력 3년차인 서울 K유치원 이모(28)씨는 "평가를 위한 기록물을 만들려고 수업 중간에 사진을 찍고 서류를 작성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경기 C유치원 최모(29) 교사는 "일일교육계획서 등 평가 준비 자료를 마련하느라 아이들 수업 준비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말했다. 원생 수가 줄어 운영 자체가 어려운 영세유치원들은 특히 평가 준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맹탕' 평가 방식 또한 벌써부터 도마에 오르고 있다. 현장 실사가 있으나 단 하루 밖에 안돼 서류에 의존한 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수업시간에 이뤄지는 교육의 내용 등 질적인 부분이 중요한데도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 유치원 측의 지적이다.

유치원 측은 열악한 재정이나 부족한 교사 수 등을 고려하면 평가가 시기상조인데도 정부가 무리하게 평가를 강행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 Y유치원 장모 원장은 "평가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평가항목별로 점수가 나오는데다 총점에 따라 순위도 매겨져 어쩔수없이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교육계 인사는 "유치원 평가는 교사 처우가 현실화 하고, 재정의 투명성이 제고된 뒤에 하는 게 순서"라고 강조했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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