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평이 쏟아진다. 예감이 좋다. 수상을 하느냐 하는 것보다 이제는 어떤 상을 받느냐가 더 관심거리다. 23일(이하 현지시간) 폐막하는 제63회 칸 영화제에서 '시'는 수상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시'의 이창동 감독을 20일 오후 만났다.
이 감독은 평소 일부 영화전문지를 제외하고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그는 "영화 홍보를 위한 이야기는 솔직해지기 어렵고 결국 사기 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인터뷰를 꺼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시'가 칸에서 호평받고 있는 데 대해 "상을 못 받으면 기분 나쁘고 창피할까봐 경쟁은 싫다"며 쑥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시'는 시를 배우고자 할 즈음 외손자의 성폭행 사건으로 삶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드는 60대 여인 미자(윤정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공식 기자회견에서 경쟁을 마냥 즐기진 못한다고 했는데요.
"경쟁을 하려고 영화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영화제가 올림픽처럼 승부를 내고 기록을 내는 곳이 아니잖아요. 학교 다닐 때도 시험 치는 것을 싫어했어요.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영화제 출품은 돈 댄 사람이 하자니 한 것이죠. '칸 영화제마저 없으면 무엇으로 홍보할래?' 그러니 제가 뭐라 말할 처지가 못된 것이죠."
- 윤정희씨를 캐스팅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윤정희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시나리오를 쓸 때 주인공의 외면과 내면을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데뷔작 '청춘극장' 때부터 저를 유혹하신 분입니다.(웃음) 부부 동반 식사를 할 때 마음이 켕겨 시나리오를 다 쓰지 않았는데도 말씀을 드렸어요. 말하고 난 뒤 너무 기대하실까 후회를 하긴 했지만요."
- 이번 영화는 60대 여인, 한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 개인의 일상적인 삶과 남들의 고통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의 일상이 누군가의 고통과 연결돼 있다고 봐요.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발 밑에 안 보이는 물줄기가 연결돼 있듯 모두 서로 관련이 있어요. '시'는 개인의 이야기이면서도 집단과 공동체의 이야기입니다."
- '시'를 만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예전 문학을 했던 사람으로서의 부채의식과는 상관 없습니다. 남들은 변태라고 하겠지만, 관객과 소통하기 어렵다고들 하니 그러면 할 만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밀양'을 준비할 때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터졌습니다. 제가 영화를 찍을 공간에서 벌어진 일을 모른 척하고 '밀양'을 통해 초월적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영화 제작을 중단하고 몇 달 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때 그 일이 제 마음 속에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그 사건은 밀양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영화는 은밀히 처리된 다른 지역의 유사 사건을 다뤘다고 보면 됩니다."
- 영화의 서술 방법이 너무 담담해서 그런지 흥행 성적은 좋지 않습니다.
"국내 흥행은 사실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일본 여행 중 TV를 보다 문득 제목과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동행한 한 시인이 무모하다고 그러더군요. '몇 번 성공을 거두더니 건방져졌다'고 하면서요. 그러니 더 하고 싶다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그 시인의 말이 일반 관객들의 시각이라 볼 수 있죠. 저는 마음이 간절하면 통한다고 봅니다. 관객이 일단 극장에 오면 우리의 마음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 관객에게 감독의 의도를 강요하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관객의 몫을 많이 남겨 불편해하는 듯해요. 나쁜 사람들을 단죄하는 등의 분명한 내용을 보고 싶다고들 하더군요. 관객이 원하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폐쇄적인 구조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죠. 그건 현실과 관계 맺는 진정한 방법이 아닙니다. 일종의 속임수입니다."
- 황금종려상 수상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저는 황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웃음) 2007년 '밀양'으로 칸 영화제 왔을 때 니스마탱이라는 이곳 신문이 전도연이 긴 의자에 누워 있는 사진을 싣고 '여주인공도 지루해서 자고 있다'는 설명을 달았습니다. 악담 치고는 참…. 그런데 그 신문이 이번엔 '가슴의 종려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그런 상이 있다면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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