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여개 회사를 '꿀꺽' 문어발의 대명사
멕시코에는 "단 하루도 카를로스 슬림의 돈이 불어나는 일을 하지 않는 날이 없다"는 말이 있다. 외식을 하든 담배를 피우든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카를로스 슬림 엘루(70ㆍCarlos Slim Helú)가 소유한 회사의 매출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해외에선 슬림이 '멕시코 통신 재벌'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슬림은 통신뿐 아니라 보험, 건설, 인쇄, 레스토랑 체인, 담배회사, 중소 부품제조사 등등 수많은 업종의 다양한 회사들을 갖고 있다. 전형적인 '문어발 확장'이지만, 이를 통해 이뤄낸 그의 부는 엄청나다.
신흥시장국 최초의 세계 1위 부자
2007년8월, 월스트리트저널과 포브스 매거진은 "카를로스 슬림이 빌 게이츠보다 더 부자일 수 있다"는 기사를 냈다. 멕시코 밖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사업가가 갑자기 세계 1위 부자가 됐다는 건 충격이었다.
세계 갑부 대열에 혜성처럼 등장한 슬림은 포브스 억만장자 순위에서 2008년 2위, 2009년 3위에 오른 데 이어 올해 드디어 빌 게이츠를 제치고 공식 1위가 됐다. 포브스가 추정한 슬림의 자산은 535억달러. 16년 동안 세계 1위 부자 자리를 미국인이 독차지해 왔으나, 슬림이 신흥시장국 부호로선 처음으로 정상에 등극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세계 1위 부자는 지난 10년간 부의 권좌를 지켰던 빌 게이츠와는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게이츠는 일찍부터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에 눈을 떴고, 첨단기술의 상징인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함으로써 '벤처형 부자'의 전형이 됐다.
하지만 슬림은 다소는 구시대적이고 후진국적인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부를 일궜다. '컴맹'인데다, (통신재벌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휴대폰 기능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아날로그'인물로 알려져 있다. 게이츠가 최첨단 시설이 갖춰진 궁전 같은 저택에 사는 반면 슬림은 30년 전 구입한 낡은 집에서 살며, 해외에도 집이 없고 슈퍼 리치의 '필수품'인 요트도 없다.
반면 워런 버핏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버핏은 11살 때, 슬림은 12살 때 처음 주식투자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재에 밝았고, 뛰어난 투자 감각, 비상한 수학적 능력도 비슷하다.
슬림은 레바논 이민자 출신이면서도 근면함과 뛰어난 경영, 투자 감각으로 사업에 성공했던 아버지 훌리안 슬림 하다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용돈 기입장을 꼼꼼히 기록하게 하는 등 경제감각을 길러 줬다.
주식 거래하듯 기업을 사고 판다
멕시코의 명문대를 졸업한 슬림은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돈을 불리다 1970년대부터 중소 규모의 기업을 본격적으로 인수ㆍ합병(M&A)하기 시작했다. 특히 80년대 초인플레이션과 채무불이행 등 멕시코가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자 헐값으로 수많은 회사를 인수했다.
84년 1,300만달러에 사들인 보험사 세구로스 데 멕시코는 2007년 15억달러 가치의 회사로 성장했고, 85년 3,000만달러에 인수한 레스토랑 체인 산본스는 매출액 5억달러의 우량 기업이 됐다. 그가 두 지주회사를 통해 사들여 보유한 기업 수는 200여개에 이른다. 기업을 저가에 통째로 인수하거나 지배지분을 사들이는 버핏의 투자방법과도 유사한 셈이다.
그러나 슬림을 멕시코 최대 갑부로 만들어 준 직접적 계기는 1990년 국영 통신업체였던 텔멕스(TELMEX)의 지분 20%를 인수한 것이었다. 텔멕스는 현재 멕시코 유선전화 시장의 92%를 장악하고 있다. 특히 90년대 후반 텔멕스의 무선통신 부문을 분사해 만든, 이동통신회사인 아메리카 모빌은 주가급등으로 현재 그의 자산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멕시코 이동통신시장의 75%를 장악하고 있는 이 회사는 남미 전체에서도 점유율이 가장 높다.
나라가 망해가는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자국기업을 사들이는 배짱으로 돈을 번 슬림은 그 동안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세계 최고갑부의 반열에 오르자, 언론 인터뷰등 외부활동을 늘려가고 있다. 원래 기부와는 거리가 인색한 삶을 살았으나, 2007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4년 동안 60억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경영난에 빠진 뉴욕타임스의 지분을 매입한 데 이어, 2억5,000만달러의 거액을 빌려주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음 주에는 인터넷 검색업체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소개합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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