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원(40), 최예선(36)씨 부부의 생물학적 나이는 '청춘'과 멀다. 그러나 "한 번 마음에 새겨진 것을 찾아" 나서는 부부의 열정은 이팔청춘 부럽지 않다. 건축가인 남편 정씨, 미술사를 전공한 부인 최씨의 마음에 그렇게 새겨진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일제 강점기 사이에 세워진 이 땅의 근대 건축물들.
(모요사 발행)는 정씨 부부의 근대 건축물 답사기다. 부부는 지난해 1월1일부터 12월25일까지 주말과 공휴일, 휴가를 반납해가며 발품을 팔았다.
성공회 정동 대성당이나 우정총국처럼 잘 알려진 곳도 있지만, 1930년대에 흥성했던 태백의 철암탄광이나 일본 어민들의 집단 거주촌이었던 포항의 구룡포마을 적산가옥들처럼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지방 구석구석의 건축물까지 70여 곳을 두루 훑었다. 건축사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건물마다 얽힌 사람과 사연들을 눈여겨봤다. 책에 소설적인 구성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100년 전이면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살았던 시대입니다. 그분들은 은행, 관공서, 학교, 병원 등 새로운 시스템을 상징하는 건물들을 보고 그것들을 배척하기보다는 '저게 뭘까?'라는 호기심이 더 컸을 것 같아요."
부부가 근대 건축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3~06년 프랑스 리옹에서의 유학 경험이다. 이들은 복도도 좁고 엘리베이터도 오래된 100년도 더 된 아파트에 살았다고 한다. "낡은 건물이었지만 그 건물의 분위기와 품고 있는 얘기가 좋았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곳을 찾아보기로 결심했지요."
귀국 후 부부는 근대 건축물들을 찾아 나섰지만 개발 때문에 사라져가거나 허물어질 위기에 처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건축물들이 어떤 의미나 가치를 체화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리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나마 문화재청이나 지자체에서 요즘 근대 건축물 복원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다행입니다."
정씨 부부는 그러나 단순한 구조 복원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축물은 삶이 녹아들고 어떤 식으로든 계속 사용되어야 진정한 복원이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1930년대 벌교읍에 세워져 상점, 살림집으로 쓰이다가 방치돼있던 전남 보성의 '보성여관'을 최근 문화재청이 매입해 갤러리, 카페, 레지던스로 바꾸는 것은 모범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낡은 부분은 정성스럽게 갈아끼우고 부족한 부분은 보충하며 우리 삶과 함께 조금씩 변해가는 건축물을 볼 때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조는 복원할 수 있지만, 정취까지 복원할 수는 없잖아요."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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