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데닛 지음ㆍ김한영 옮김/동녁사이어언스 발행ㆍ 560쪽ㆍ2만2,000원
과학과 종교는 양립할 수 없을까. 각각이 '겹쳐지지 않는 교도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평화공존파가 있긴 하지만, 최근 과학계에서 부상하고 있는 이들은 맹렬한 우상 파괴 과학자들이다. 과학계의 '신(新) 무신론' 운동을 주도하는 최전선의 전사가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69)라면, 대니얼 데닛(68)은 이를 종합하는 철학적인 버팀목 같은 인물이다. 이 양대 거두의 대부는 물론 찰스 다윈이다.
인지과학 및 심리철학의 거장인 대니얼 데닛 미국 터프츠대 교수의 는 2006년에 도킨스의 과 함께 나란히 출간된 종교 비판서다. 생물학뿐만 아니라 인지과학, 인류학, 경제학 등으로 퍼져가고 있는 현대 진화론의 성과를 집적, 종교 현상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분석한 논쟁적 저작이다.
데닛이 책 제목에서 직접 겨냥하고 있는 '주문'은 종교를 솔직하고 전면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막는 금기다. 주문 깨기는 곧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종교를 둘러싸고 있는 거짓과 신화, 위선의 장막을 걷어내려는 시도다. "나는 금기 깨기를 두려워하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놓으시오! 놓으시오! 추락하는 걸 느끼지도 못할 겁니다!"(47쪽)
데닛의 작업은 먼저 종교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 뒤 애니미즘, 샤머니즘 등의 민속종교가 체계적인 종교로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가 종교적 관념의 뿌리로 꼽는 것은 '활동이 있는 곳에 행위자를 찾으려는 과잉 경향'(예컨대 바람이 분다면 바람을 일으킨 행위자를 찾는 것)이다. 이는 원래 포식자를 탐지하고 추론하는 능력으로서, 자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류가 진화시킨 능력이다(먹고 먹히는 정글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바스락거리는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이 인지능력에서 나온 부산물이 바로 나무, 바람, 구름 등에 각각의 행위자들이 있다는 물활론(物活論) 등의 초기 종교형태라는 것이다.
이런 종교관념들이 무익한 것만은 아닌데, 인간에게 '책임 회피' '건강 유지' 등에 도움을 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데닛은 이로써 종교 관념이 자연선택 과정에서 살아남아 복제와 변이 등을 거치면서 진화를 거듭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데닛이 줄기차게 던지는 질문은 '누가 이익을 보느냐'다. 초기 종교 형태에서 '비밀주의'와 '반증에 대한 방어' 등이 출현한 데에는 종교적 사제들의 이기적 동기가 개입했으며 사제와 정치권력의 동맹도 한몫했다는 것이다. 종교는 이후 '믿음에 대한 믿음'이라는 만능의 패를 개발해 합리적 이해를 불가능하게 만들며 영속성을 획득하게 됐다는 설명으로 이어진다. "지옥불이 채찍이라면 신비는 당근이다. 믿음을 요구하는 명제는 이해할 수 없어야 한다!"(301쪽)
여기서 궁극적 수혜자는 누구인가? 데닛에 따르면, 바로 종교 그 자체다. 종교 스스로가 독자적 단위로 자율성을 획득해 숙주(인간)들의 충성을 이용해 복제하고 번식한다는 결론이다. 이는 곧 도킨스가 제기한 '밈 이론'과 같은 맥락이다. 도킨스가 종교를 해악만 끼치는 '바이러스'로 본다면, 데닛은 종교를 야성에서 순화된 '길들여진 밈'으로 보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종교인들이라면 소름 끼칠 정도로 경악스런 주장이다.
종교적 실체를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종교는 도덕성을 함양하고 삶의 의미를 주는 긍정적측면이 있지 않는가? 이에 대한 데닛의 대답은 "확인된 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신앙의 절대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종교의 특성상 관용의 제스처는 위선이며 언제든지 광신과 배타성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진화론자들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생물학적 환원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진화론자들이 무기로 삼는 '누가 이득을 보느냐'는 질문 자체가 환원주의적 요소를 깔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데닛이 이 책에서 설명한 종교의 진화 과정 역시, 그 스스로 인정하듯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하지만 각종 종교 현상을 둘러싼 무수한 호기심에 대해서 그냥 얼버무리거나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지 않으려 한다면, 종교와 과학의 최전선의 대척점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데닛의 이 저작은 피해갈 수 없는 책이다. 56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는 종교에 대한 무수한 질문들이 쏟아지며, 거기 답하기 위한 진화론자들의 현대적 연구 성과가 결집돼 있다.
●종교 진화론 진영內서도 시각차
진화론 진영 내부에서도 종교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은 학자들마다 조금씩 달라 논쟁이 한창 진행중이다.
초월자를 믿는 행위가 독 있는 음식을 피하는 행위처럼 진화적 적응의 직접적 산물이라고 보는 '종교 적응주의론'의 대표적 학자는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명예교수와 데이비드 슬론 윌슨 뉴욕 주립대 교수다. 에드워드 윌슨은 종교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고, 사후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며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을 도와주기 때문에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즉 종교가 개인의 생존과 번식에 직접적 이득을 줬기 때문에 선택됐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슬론 윌슨 교수도 종교를 적응의 산물로 보지만, 개인이 아니라 집단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에드워드 윌슨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집단의 협동심을 증진시키는 이점 등으로 집단선택으로 종교가 진화했다는 것이다. 종교 행위를 통해 '누가 이득을 보느냐'는 질문에서 에드워드 윌슨은 개인이, 데이비드 윌슨은 집단이 이득을 봤다는 설명이다.
이에 맞선 것이 종교를 적응의 산물이 아닌 부산물로 보는 견해다. 종교 행위는 행위자 탐지 능력 등의 인지 능력에서 따라 나온 부산물로 인류의 적응에 직접적 이득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밈 이론'으로, 부산물이었던 종교가 자율성을 획득해 스스로 복제 번식하며 진화했다는 이론이다. 리처드 도킨스와 대니얼 데닛이 대표적인 학자다. '누가 이득을 보느냐'는 관점에서 보면 수혜자는 종교 그 자체라는 것으로 종교 비판으로서는 가장 과격한 입장이다. 다만 도킨스는 종교를 박멸해야할 대상으로 보는 반면, 데닛은 '야생 밈'과 '길들여진 밈'으로 구분해 종교를 박멸이 아닌, 순화시켜야할 대상으로 본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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