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를 보고 왔다. 나는 한때 좋은 소설가였던 이창동 감독이 영화로 보여줄 시(詩)가 궁금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시'는 좋은 영화다. 139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내내 생각하면서 봐야 하는 영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자리에서 쉽게 일어서지지 않는 영화다.
그러나 시인으로 기대했던 '시'는 불만이다. '시'는 영화일 뿐 우리시대 고뇌하는 시인들의 '시'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 '시'에서 '시'는 주연이 아니다. 시는 희화화된 엑스트라일 뿐이다. 시는 조롱당하고, 시는 웃음거리가 되고, 시는 대책 없이 취해있다. 영화가 끝난 뒤 '시'에서 시가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다.
내가 시인이고 영화 제목이 '시'이기에 더욱 그렇다. 영화에서 시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시인을 이창동 감독은 철저하게 무시한다. 물론 이 영화가 시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의 영화는 시를 넘어선 자리에 있다. 다만 그가 보여준 시는 진짜 시가 아니라, 연기하는 시이다.
그것도 가장 서툰 연기였다. 시가 10년이나 20년 전쯤 낡은 옷을 입고 시를 연기하고 있다. '시'라는 영화에서 시가 연기를 가장 못하는 것이 나는 화가 난다. 하지만 이 감독이 부조리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선택한 페르소나가 '시'였기에, 칸에서 날아올 낭보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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