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장 동선을 조정하고 회의 방식을 개선하는 것처럼 회사 규정도 개정하고 기구도 변경한다. 기업의 노사관계나 관련 법률도 예외가 아니다. 노동조합 일을 전업으로 하는 직원의 급여를 누가 부담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그 중의 하나이다. 회사 업무가 아닌 노조 일을 담당하는 전임자에 대한 급여를 회사가 부담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노사관계는 이 부자연스러움을 적절히 활용하여 많은 발전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회사가 전임자 임금을 제공하면 노조의 자주성이 훼손될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임자 임금을 회사에 의존하게 되면 뭔가 명쾌하지 못한 느낌이 드는 것은 노사 모두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관련법에서도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은 이미 1997년에 마련됐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10년 넘게 시행하지 못하다 올 7월부터 시행하기로 합의하였다.
대부분의 제도가 그렇듯이 이 제도에 대해서도 이해 당사자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불만을 말하고 있다.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전임자 수를 종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별도 재원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임자 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수년간 기업 차원에서 경험해온 구조 조정이 노동조합에도 적용되는 셈이다.
경영자들도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우리의 경쟁 상대국인 미국과 일본의 관련 제도에 비해 회사 부담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노조 전임자의 노무관리적 성격의 업무 즉 사용자와의 협의, 교섭, 고충처리, 산업안전 활동 등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면제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국들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우리보다 낮은 수준에서 인정되고 있다. 예컨대 단체 교섭을 함께 하는 시간이라도 회사가 요청한 교섭의 경우에만 근로시간 면제가 인정되고, 노조가 요청한 교섭은 근로시간 면제가 적용되지 않는 노사관계도 있다.
노사관계는 상호관계이다. 그 기준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이 노사관계의 발전과정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우리 노사관계에도 많은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항상 어려움을 느낀다. 시장에서 보다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 일본 미국 등의 경쟁회사와 숨돌릴 틈도 없이 이어지는 진검 승부에 진저리가 쳐질 때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생존하고 있고, 크게 발전하였다는 국제적인 평가도 받고 있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나에게 유리한 면만 보거나 나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사례만 찾아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현실에 알맞은 기준의 개발과 정립이 필요하다. 국가에서 법률로 시행하는 제도적인 선택을 피할 방법은 없다. 우리 노사도 새로운 제도의 시행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
노조 전임자 급여는 노조 자체에서 부담한다는 기준이 강화되는 경우, 노동조합의 운영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조합원들과 전임자의 관계가 보다 긴밀해질 것이다. 하의상달 채널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노조 전임자의 역할이 부분적으로 재정립되고 조합원 참여의 폭이 넓혀질 수 있다. 이는 사용자와의 협의, 교섭, 고충처리, 산업안전보건 등에 대한 노조의 역할 강화를 의미하고, 회사는 이런 과제들에 대해 노조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다. 합리성과 상호 존중을 통해 노사가 새로운 제도 정착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기대한다.
반병길 한국경영조직연구원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