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벚꽃은 이상저온 현상으로 열흘 정도 늦었지만 폭발하듯이 핀 자태는 어느 해 못지 않게 화사했다. 그런데 지금쯤이면 한참 살이 붙고 있어야 할 선홍색 버찌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기상관측 사상 최저를 기록한 4월 한파로 벌들의 활동이 저조해 수분이 잘 안됐거나 버찌로 자랄 씨방이 냉해를 입어 일찍 떨어져버린 것 같다. 1960~70년대 만해도 춘궁기 막바지 보리 벨 무렵 통통하게 살이 오른 까만 버찌는 뽕나무 오디와 함께 시골아이들의 허기를 달래준 먹거리였다. 올해는 그 새콤달콤한 추억의 맛을 보기 어렵게 됐다.
■ 배 사과 복숭아 과수농사도 냉해가 심하다. 배 주산지 전남 나주는 한창 배꽃이 필 무렵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눈까지 내려 피해가 특히 컸다. 배나무 70~80%의 꽃눈이 얼어 죽거나 씨방이 말라 붙어 올 가을 수확을 포기할 판이다. 사과 복숭아 감 재배 농가도 사정이 비슷하다. 참외 수박 오이 등의 시설재배는 일조량 부족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농민들은 인건비도 못 건진다고 한숨인데, 농업재해 보상 제도가 허술해 보상도 여의치 않다고 한다. 도시 소비자들도 올 여름과 가을, 과일 채소 사 먹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 4월 이상저온은 벌써 물러갔어야 할 대륙고기압이 4월말까지 기세를 떨쳐 우리나라에 한기가 자주 들어왔기 때문이다. 철 늦은 북풍 한파로 전국 평균기온 통계가 잡히기 시작한 1973년 이후 4월로는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했고 일조량도 가장 적었다. 하지만 엊그제 세계기상기구(WMO) 발표에 따르면 올 4월이 1880년 기온 측정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운 4월로 기록됐다니 어리둥절하다. 세계적으로 냉전이 소멸된 지 오래인데 유독 한반도만 냉전의 한기가 가시지 않는 상황을 그대로 닮은 듯해 묘한 기분이 든다.
■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한반도가 북풍 한파에 휩싸였다. 과거 남한의 주요 선거에 맞춰 터진 북한의 도발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7년 대선 직전 KAL기 폭파 사건이 그랬고, 1996년 총선에 앞서 북한이 비무장지대에서 벌인 무력시위가 그랬다. 6∙2 지방선거를 두 달 조금 앞두고 몰아 닥친 천안함 북풍은 주요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해왔다. 그 바람에 유권자들의 관심이 분산되고 한 표의 주권 행사에 소홀해져, 이번 지방선거가 버찌 없는 벚나무처럼 알맹이가 빈약한 결과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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