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열단 파견 제의 배경과 전망
"천안함 사태에 대해 자체 검열단을 파견하겠다"는 20일 북한 국방위원회의 성명은 시기와 내용면에서 상당히 주목된다.
북한은 이날 남측 민군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 직후 국방위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놨다. 오전 10시 브리핑이 시작된 지 30분 만이다. 북한의 신속한 반응은 과거 도발과 비교해도 여러모로 대비된다. 지난해 11월 발발한 대청해전 당시 북한 군부는 사건 발생 4시간 50분 후 교전을 남측의 도발로 규정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가장 빨리 반응했다는 1999년 1차 연평해전 때에도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조선중앙통신의 보도가 나왔다.
성명 주체로 북한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를 인용한 것도 이례적이다. 국방위 성명은 1월 남한 당국의 북한 급변사태 대비 계획을 문제 삼아 '보복 성전(聖戰)' 위협을 거론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전례 없이 빠른 대응과 최고 권력기구를 동원한 성명의 격(格)은 북한 역시 천안함 사태 파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전국가적인 성전' '한계 없는 보복타격' 등 성명의 내용은 예상대로 북한 연루설을 부인하는 강한 어조의 수사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이 같은 대남 비난 보다는 '검열단 파견'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북한이 자신들이 저지른 도발 사건에 이처럼 적극성을 보인 사례가 전무한 탓이다.
북한의 검열단 파견 제의는 '시간 벌기' 성격이 짙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간 군사 관련 문제는 사전 통지문 교환 등 일정한 절차를 거친 뒤 인적 왕래가 이뤄지는 게 순서인데 검열단 파견부터 언급한 것을 보면 북한이 천안함 문제에 상당한 압박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한의 강력한 대북 제재 조치가 예상되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검열단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다.
또 남측이 제시한 물증이 북한 소행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자체 판단 아래 적극적인 해명을 통해 북한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해석도 있다.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북한은 제재를 우려해 전면전 운운했지만, 실상은 사실관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천안함 사태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북한의 검열단 파견 제의에 고심하면서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이미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 절차에 착수하는 등 천안함 사태가 남북 문제의 수준을 벗어난 만큼 정부와 국제사회가 합의한 공조의 틀 속에서 해결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박정이 민관합동조사단 공동단장도 이날 조사결과 발표에서 "현재 남북간 정전 상태를 관리하기 위해 유엔사 정전위원회가 편성돼 있다"며 "따라서 (천안함 사태의) 북한 연루 여부는 정전위에서 판단하고 그 결과를 갖고 북측에 통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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