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26 이전과 이후의 남북관계가 같을 리 없고, 5ㆍ20 이후의 한국사회가 그 전과 같을 리도 없다. 천안함사건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 이후, 남북 사이에는 예상대로 숨가쁘고 긴장된 기류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는 조사결과에 대한 긍정과 회의가 여전히 엇갈리고, 6ㆍ2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른바 '북풍'의 영향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초기에 북한 가능성이 낮다는 태도를 보였던 민주당은 국민적 의혹이 해소되기에는 부족하다는 논평을 내고, 대통령 사과와 내각 총사퇴, 국회 특위를 통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정부의 안보 무능, 정치적 이용과 북풍 조성 의혹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의 주장 맹목적이지만
조사결과는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논리적이다. 외국 전문가들의 도움이나 입회를 거쳤지만, 우리의 과학적 조사 자체가 상당한 수준임을 알게 한다. 그런데도 믿지 않는 것은 믿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북 조치에 관한 문제와 별도로, 믿지 않거나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 내부의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이명박 정부로서는 큰 과제다.
최근 어느 기업인이 남과 북에 대해 쓴 글에 "실용이 지나치면 교조가 되고 믿음이 지나치면 눈이 먼다"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을 원용하면 정부ㆍ여당의 실용은 자칫 교조가 될 수 있고 야당의 믿음은 자칫 맹목이 될 수 있다. 맹목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일이다. 민주당은 조사결과 발표와 북풍을 연결 짓는다. 하지만 김민석 공동선대본부장 스스로 말했듯이 "우리 국민의 민도가 북풍에 좌우되는 수준은 넘어섰다. 역대 선거에서 북풍 이슈가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자꾸 북풍을 거론하는 것은 맹목적이다. .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국정 운영을 가다듬어야 한다. 특히 지지자나 반대자들을 불문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사 발표에 앞서 야당에 미리 설명을 해 주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아울러 오해를 살 수 있거나 무신경하고 옹졸한 정치ㆍ행정행위도 불식해야 한다.
5ㆍ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함으로써 기념식을 스스로 망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취소되긴 했지만 행사장에 총리가 입ㆍ퇴장할 때 경기민요 '방아타령'을 연주하려 한 것, 실수라곤 하지만 서울광장의 5ㆍ18행사에 당 대표가 축화 화환을 보낸 것은 어처구니없다. 지방선거 홍보 동영상에서 "여자가 아는 것은 쥐뿔도 없다"고 여성을 비하한 것도 마찬가지다. 무심하고 허술하다.
23일로 예정된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모행사도 서울시는 불허했다가 몇 시간 만에 허가했는데, 불허의 명분과 허가의 이유가 말끔하지 않다. 순전히 실무자 판단이라 해도 이 일을 정부ㆍ여당과 떼어서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국민장으로 치른 장례와 작년의 국민적 추모열기를 기억한다면 서울광장에서 1주기 행사를 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공직이 서비스직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혹시 그 날 광장을 사용하지 않겠느냐"고 물어 볼 정도가 돼야 한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도 흐뭇해했을 것이다.
결속·신뢰 확보는 정부의 몫
어제 민주당이 낸 논평에는 천안함 사건 훈공문제를 언급한 것도 있다. 어뢰 프로펠러라는 증거를 찾아낸 해군 요원들에게 보국포장을 수여하는 등 포상을 준비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지적인데, 그 내용이 맞다면 민주당의 주장이 옳다. 사건에 대한 책임 추궁과 처벌조치는 없이 포상부터 하는 것은 성급하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마음을 사는 감수성과 수사(修辭)능력이 부족하다.
'유엔이 정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21일)을 맞아 어제 문화예술인들이 또 성명을 발표했다. 요즘 상황은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문화의 위기, 문화다양성의 위기라는 지적이다. 흘려 들을 말이 아니다.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새기면서 공존과 교류, 소통의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그들의 약속은 바로 정부의 다짐이 돼야 한다. 어떤 식으로 북을 다루든 우리 내부의 결속이 약하면 제대로 될 일이 없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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