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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6) 발우공양 총책임자 대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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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6) 발우공양 총책임자 대안스님

입력
2010.05.2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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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잃어버렸다 생각하여 한참을 찾아 헤매다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니 그 물건을 집에 두고 나간 것이었다는 식의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겪게 마련이다. 내가 발걸음을 떼기 전, 과연 어디에 앉았고 서있었나를 거슬러보면 잃어버렸다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아직 그 자리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우리가 지금 처한 건강의 위기, 마음의 상실감에 대한 해답이 본래 우리가 살았던 옛집에 있을지 모르겠다. 본래 우리가 밟고 살았던 흙, 본래 우리가 철마다 캐먹던 이름 모를 산채, 본래 우리가 마셨던 흐르는 물과 말간 공기를 한 상 밥에 살려내려는 분을 만났다. 나에게는 마음의 주치의 같은 분, 대안스님이 그 주인공이다.

예쁘고 맛있는 채식

노랗고 뽀얗고 불그스름한 과일과 채소를 그대로 말려서 나무 그릇에 담아낸다. 이 한 그릇이 '주전부리'라 불리며 식전이나 식간, 식후에 오물거리며 여유로운 식사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각종 뿌리채소의 쌉쌀한 맛이 입맛을 잡는 샐러드는 새침한 매력이 있다. 능이버섯으로 멋을 낸 중후한 버섯 잡채, 야들야들한 쑥이 씹히는 쑥즙탕, 견과류를 박아 꼭 쥐어서 싱싱한 오이로 테를 두른 쌈밥 등은 서울 조계사 맞은편에 위치한 발우공양에서 맛볼 수 있는 메뉴의 일부다.

내 하는 일이 음식 만들고, 남이 하는 음식 맛보는 일인지라 저 시골의 밥상부터 남의 나라 레스토랑까지 맛을 본다고 다녀봤어도 발우공양에서 만난 이런 음식은 처음이다. 연잎으로 싼 밥에 토장국이 나오는 진지는 찬이 여럿 따르는데, 좋은 장에 천연조미료만 사용하여 만들었으니 그 맛에 군더더기가 없다. 단순히 '착한 음식'으로만 알았던 채식, 다시 말해 사찰음식이 이렇게 모양도 맛도 화려할 수 있는가 놀라게 된다.

"진정한 사찰음식은 단순히 육류를 덜어내는 차원이 아니지요. '생명존중'의 마음이 기본으로 담겨야 합니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축 늘어져있던 입 안의 세포가 하나하나 깨어나는 것 같은 맛을 만들고 있는 대안스님의 첫 마디다.

"내가 먹은 음식이 나를 만들고, 내 인품을 만드니까 깨끗한 음식을 먹는 것이 좋겠지요"하시며 우리 음식의 기본이 되는 장이며 소금과 같은 '기본'을 강조하신다. 기본이 무너진 음식은 과학의 발달과 그 역사를 함께 한 '첨가물'로 대표된다. '바나나 향'을 첨가한 음식은 엄밀히 말해 바나나를 흉내 낸 '가짜 바나나'다. '진짜'가 귀해지면서 가짜 맛을 포장하기 위한 첨가물만 나날이 발전하고, 그 첨가물로 맛을 낸 가짜만 우리 상에 놓이는 '오염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스님의 말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간장만 해도 우리가 본래부터 먹던 진간장을 쓰면 좋지요. 작년 잡았던 간장에 새 메주를 띄우고 소금물 농도 새로 맞춰 다시 숙성시키고, 그렇게 해마다 반복해서 만드는 간장은 몇 십 년이 지나면서 그 맛이 더 깊고 진해지니 약이 따로 없지요."

맞다, 하지만 우리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일본식 간장에 입맛이 길들여지고 있으니 갈 길이 멀다. "왜간장으로 너비아니 맛을 낼 수 있을까요?" 스님의 한 마디에 '한식의 세계화'에 앞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가 먼저 떠오른다. 우리 물, 우리 공기, 우리 바람, 그 세 가지가 만들어 낸 우리 장을 기본으로 한 우리 맛의 근본을 이쯤에서 다 잡고 세계로 가야겠구나 다짐이 생긴다.

착한 음식에 길들여지기

"부자라고 해서 반드시 잘 먹고 산다고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지요." 스님이 또 운을 띄우신다. 음, 과연 잘 먹고 산다는 것은 무얼까?

"내 몸에 꼭 필요한 만큼을 맛있게 먹고, 그 음식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세포의 움직임을 살피는 노력이 각자에게 필요합니다. 세포를 이롭게 움직이는 제철 식 재료가 대부분 산에서 나는데, 우리는 국토의 많은 면적이 산으로 이루어졌으니 감사한 일이네요."

그 말씀에 '산'이 새롭게 보인다. 우리가 일년 내내 먹을거리 걱정 없도록 의지할 수 있는 산, 말하자면 자연의 식재료 저장고인 셈이다. 나물의 '씨'를 살리고 보존해서 돈이 있든 없든 누구나 산나물을 쉽게 섭취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스님의 바람은 이렇게 사찰음식을 나누는 공간을 총괄 지휘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발우공양은 여느 음식점처럼 돈을 지불하고 식사하는 곳이지만, 손님들은 누구 하나 서두르는 이가 없다. 시간에 의해 발효된 기본 장과 자연 엑기스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모두들 본래 자신이 뛰놀던 산과 들을 기억해 내고 있는 것일까.

조미료와 남에게 상처 주는 험한 말과 공해에 찌들어 있던 혀는 새벽같이 백팔 번의 절을 올리고 비로소 한 그릇의 들깨죽을 먹을 때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종교적인 이유로 절은 생략하더라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아 많은 이들이 발우공양을 찾는 지금, 스님은 사찰음식을 통해 음식문화의 '가치'를 되찾는 계기를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신다. 동물의 뼈를 푹푹 끓여 만든 국물에 또 고기를 넣고 후룩 마셔야만 보양식이 아님을 나는 오늘 깨닫는다. 먹고 남은 과일을 밀폐용기에 담아 만드는 천연초, 흙길에 떨어져 있는 감을 주워다 항아리에서 두 달 가량 삭혀 만드는 감식초 등으로 동물을 해치고 싶지 않은 선한 마음을 담아 만든 단순한 음식이 나를 선하게 만든다.

"선한 음식의 미래는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요. 학교에서 가정에서 제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가려내고 제대로 먹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사회는 점점 더 오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동기부터 햄버거로 때워가며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의 미래는 어떤 기억과 맛으로 채워질 것인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국내산 좋은 재료로 공들여 만들기 때문에 단가를 많이 낮출 수 없는 발우공양의 맛을 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계획 중인 '푸드 코트(food courtㆍ다양한 메뉴를 셀프 서비스로 골라 먹을 수 있는 매식 업장)', 그리고 '테이크 아웃'할 수 있는 사찰음식 메뉴 개발이 어서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특히 사다 먹는 사찰음식이 가정에서 아이들의 입맛을 착하게 길들일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기대가 크다. 우리 입맛을 되살리는 노력의 하나로 본인이 직접 박사 과정의 수양까지 겸하고 계신 대안스님은 음식을 업으로 하는 나에게 있어 반성과 희망을 동시에 품게 만드는 진정한 '멘토'라 하겠다. 스님이 주신 밥을 먹고 다음날 일어나니 볕 한 줌, 풀 한 포기가 다 특별해 보인다. 기계에 찌든 마음과 건강을 오늘부터라도 이렇게 풀 한 포기에 기대볼까 한다.

■ 송연죽 만드는 방법

재료: 멥쌀 1컵, 연근 300 그램, 솔잎 30 그램, 소금 약간, 물 900ml.

1. 연근은 위아래를 잘라내고 껍질 얇게 벗긴 뒤 연근 구멍 속의 불순물을 흐르는 물에 씻어 제거한다. 강판에 간다.

2. 솔잎은 흐르는 물에 씻어 잘게 썰고, 믹서에 솔잎과 물을 조금 넣고 곱게 간 뒤 면포에 받쳐 즙만 거른다.

3. 불린 멥쌀은 믹서를 이용, 거친 입자로 갈아준다.

4. 냄비에 물과 쌀가루를 넣고 저어가며 끓이다가 갈아 둔 연근과 솔잎즙을 넣고 마저 저으면서 끓인다.

5. 마지막에 소금 간 한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atgamsa@gmail.com

사진=임우석 imwoo5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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