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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부처님 오신 날과 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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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부처님 오신 날과 되는 날

입력
2010.05.2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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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음력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년 전 갖가지 꽃들이 아름답게 핀 룸비니 동산에서 카필라 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성인들의 탄생이 대개 그러하듯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시던 순간 또한 신비로운 설화와 함께 전해진다. 일례로 왕자는 태어나자마자 두 손으로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일곱 걸음을 내딛고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네. 삼계가 모두 고통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는 탄생 게를 외쳤다. 그 때 대지는 바람에 떠밀려 가는 배처럼 진동했고 하늘은 아름다운 꽃 비를 뿌리며 왕자의 강림을 축복했다.

중생의 고통 구제하는 '탄생게'

부처님의 삶을 아름다운 서사시로 묘사했던 마명 보살은 "태자는 대지에 떠오른 태양처럼 맑게 빛나고, 높이 솟은 달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고 노래했다. 빛나는 것 중에 태양이 으뜸이듯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인 '세존(世尊)'은 이렇게 오셨다.

그러나 부처님은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시기 전에 이미 우리 곁에 오셨으니 그것은 한 편의 꿈을 통해서 였다. 카필라 국의 왕비 마야부인은 오랫동안 왕자를 보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꾼 뒤 아기를 잉태하니 그분이 바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러 오신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사바세계에 드리운 어둠을 밝혀주실 거룩한 성자를 맞이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꿈이다. 마야부인은 그 같은 꿈을 잉태함으로써 태양처럼 눈부신 왕자를 출산하게 된다. 따라서 부처님의 탄생은 인류가 품어 왔던 꿈의 탄생이다. 그리고 그 꿈은 "삼계가 모두 고통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三界皆苦 吾當安之)"는 탄생게를 통해 구체화한다.

중생들은 스스로 지은 미망의 사슬에 묶여 생사윤회의 고통을 되풀이 해 왔다. 그래서 사바세계에 넘쳐 나는 번뇌와 고통이 모두 사라지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모든 인간들의 간절한 바람이 아닐 수 없었다. 태자는 이 땅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일곱 발걸음을 걸으며 그 꿈이 중생의 역사 속에서 실현될 것임을 예고한다. 7이라는 숫자는 고통스런 육도(六道)의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탄생은 마야부인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가슴에서 양육된 중생의 꿈이 '일곱 발걸음'으로 상징되는 보살의 실천을 통해 역사적 현실로 전환되는 순간임을 의미한다.

오늘 전국의 불자들은 아름다운 연등에 불을 밝히며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부처님은 아득한 과거에 한 번 오신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에서는 '부처님은 오신 바도 없고 가신 바도 없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이 부처님이 탄생한 과거 어느 날에 묶여 있을 때 부처님의 꿈은 한낱 지나간 과거의 춘몽이 되고 만다. 하지만 우리가 부처님의 원대한 꿈을 받아 가슴으로 안고 남을 위해 헌신하고 부처님처럼 살아갈 때 그 꿈은 살아 있는 현재가 된다.

'석탄' 의미는 부처 되려는 노력

부처님은 중생의 가슴에 지혜의 등불을 밝혀주셨고 자비의 씨앗을 심어주셨다. 그 씨앗이 싹 터서 무성하게 자라 잘 익은 열매를 달게 할 때 부처님은 날마다 오시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부처님 오심을 봉축하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우리가 부처님처럼 살아감으로써, 최소한 그렇게 노력함으로써 부처님 되는 날, 부처님이 되려는 날이어야 한다. 그 때 부처님 오신 날은 과거의 한 순간을 기리는 날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재의 역사가 되고,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수많은 부처님이 탄생하는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으로 바뀔 수 있게 될 것이다.

서재영 불광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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