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아침을 먹는다. 그 시간 TV에선 아침연속극이 방영된다. 자연스레 아침연속극이 어머니와 나의 공통된 '반찬'이다.
악역을 맡은 배우는 등장할 때마다 어머니에게 욕을 듣는다. 가련한 주인공은 어머니의 진정어린 위로를 받는다. 내게 아침연속극은 수준 이하의 드라마일 뿐이지만 어머니에게는 '현실'이다.
아침연속극이 만들어내는 세상에서 어머니는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고 분노한다. 전업시인을 자처하면서부터 10년 가까이 어머니와 함께 아침연속극을 보며 보냈는데 웃음보가 터지는 상쾌한 드라마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아침부터 재 뿌리는 칙칙한 이야기뿐이었다.
아침연속극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당신 남편을 의심해라' '당신 아내를 조심해라' '당신 애인에게 반드시 과거가 있다'를 끝없이 학습시킨다. 아침연속극이라는 '서바이벌 게임'에 적응해야 대한민국에 살 수 있다고 반복하며 가르친다. 어머니에게 '아주 나쁜 사람'으로 낙인 찍힌 배우는 다른 드라마에 '아주 아주 좋은 사람'으로 출연해도 채널이 돌아간다.
어머니의 분노가 극에 달할 때 내가 던지는 말씀. "어무이 저거 연속극이다. 다 거짓말이다." 그 주술로 어머니를 가상현실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다. 요즘 나도 연속극인 것을 잊고 흥분을 할 때가 있다. 그때 어머니 한 말씀 비수처럼 던진다. "저거 연속극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