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공직선거법’의 이전 명칭은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선거에서 범법행위가 발생할 것을 가정하고 이에 대한 처리에 중심을 둔 법이었다. 비록 법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아직도 그 잔재는 여기저기 남아있다. 선관위가 게시한 “받으면 과태료 50배, 신고하면 포상금 최고 5,000만원”이라는 협박성 현수막은 아직도 선거를 민주주의 축제가 아니라 불법과 감시 그리고 단속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규제하는 방식은 소극적 규제(negative system)와 적극적 규제(positive system)로 구분될 수 있다. 소극적 규제 방식은 금지하는 내용을 명시하고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자유를 부여한다. 반대로 적극적 규제 방식은 허용하는 것을 정해 놓고 그 이외의 것들은 금지한다. 따라서 전자가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하는 셈이다. 그런데 한국의 선거법은 후자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현행 선거법의 규칙을 보면 명함은 길이 9cm 이하, 어깨 띠는 길이 240cm 이하 등 길이와 넓이 등이 상세하게 정해져 있다. 심지어 현수막 천의 재질에 대해서도 금지조항이 있다. 선거운동의 창의성이나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할 수 없다. 선거 규정의 근본적 취지가 공평성 유지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 선거법을 보아도 우리처럼 불법 여부를 걱정하면서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사례는 없다.
선거법 108조는 선거일 6일 이내에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 직전에 발표되어 유권자들의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언론에서 예전에 조사했던 결과를 선거일 6일 이내에 발표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이다. 그렇다면 직전의 정보는 안 되고 과거정보는 가능하다는 말인데, 여론이란 항상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전 정보는 그만큼 정확성이 낮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정보가 적을 때 나타나는 유언비어나 “~카더라”하는 입소문이다. 정보공개가 제한된 시기에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지지도에 관심이 있다면 주변의 소문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지금 언론에서 다루는 여론조사는 상당한 신뢰수준에 이르고 있다. 과연 여론조사결과 공표 금지조항을 두어서 얻는 실익은 무엇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근본적인 의문은 선거법이 국민의 참여경험을 통한 민주주의 의식의 고양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현행법상 미성년자들은 선거에 간여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공직선거법 60조). 선거는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미성년자들은 곧 유권자가 될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선거에 무관심하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실행의 기본을 경험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성년자들이 선거에 동원될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취지지만,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적극적 판단이 필요하다.
선거법은 새로운 환경 변화에 소극적이다 못해 부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좋은 사례 중 하나가 새로 등장한 트위터를 통한 선거운동도 단속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선관위는 후보자들의 홈페이지를 통한 선거운동을 권장하지만, 얼마나 많은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홈페이지에 접속하고 있는지 현실을 파악해 보면 그 효용성의 한계를 알게 될 것이다.
투표율이 낮아지는 것이 큰 문제다. 그런데 유권자들이 선거에 관심을 가질 계기를 확대하기는커녕 투표참여 이상의 선거참여를 부담스럽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잔존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정치권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선관위는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기관이다. 선거법이 국회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국회가 근본적인 발상을 전환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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