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4강 신화'의 영광 뒤에는 애잔한 '링거투혼'이 숨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두가 축제의 분위기를 들떴던 2002년 6월, 태극전사들은 16강 이탈리아, 8강 스페인전에서 연달아 연장 접전을 펼친 까닭에 체력이 급격히 저하됐다. 16강전부터 대표팀 의무진은 정신 없이 바빴던 것 같다. 특히 16강 이탈리아전에서는 앰뷸런스가 2차례나 동원되는 등 사건사고가 이어졌다.
경기 중 수비수 김태영은 상대 공격수 비에리의 팔꿈치 가격에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이로 인해 나는 태영이와 함께 앰뷸런스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향했다. 포도당과 영양제를 섞은 링거를 맞는 등 치료가 끝난 뒤 병원 측의 도움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앰뷸런스에서 내리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가던 도중 수비수 최진철이 밥을 먹다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극심한 체력 저하를 나타냈던 최진철과 함께 병원 응급실로 되돌아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이 시기에는 선수단 치료 등으로 새벽 2시가 돼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2002년 태극전사들 중에 절반 이상이 '링거투혼'을 발휘하며 승리를 위해 하나로 똘똘 뭉쳤다. 특히 유럽 선수들을 상대로 거친 몸싸움을 해야 했던 최진철이 가장 많이 링거를 맞았고, 체력적으로 극한 상황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력으로 버티는 안타까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스트라이커 황선홍의 경우는 햄스트링이 좋지 않아 매일 치료를 받고 진통제를 먹어야 하는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링거투혼'을 불살랐던 진철이는 결국 독일과 준결승에서 발목이 삐끗하는 바람에 이민성과 교체돼야 했다.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정신력으로 버텼던 진철이가 울면서 나오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대표팀 의무팀장으로서 부상 선수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다. '빈틈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상의 경우 조그마한 부분도 놓쳐서 안 된다는 의미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는 고지대의 변수와 큰 일교차 등으로 인해 뜻밖의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100%의 몸상태로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선수단의 체력과 건강 관리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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