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둘로 갈라진 5·18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둘로 갈라진 5·18

입력
2010.05.18 12:39
0 0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찌푸린 날씨에 굵은 비까지 뿌려대는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ㆍ18민주묘지. 5ㆍ18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 온 유족들과 피해자들이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채 비장한 모습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놓아 불러댔다. "어, 무슨 일이야." 갑자기 들려온 추모곡에 기념식장은 이내 술렁거렸고, 유족들의 서글픈 노래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유족 임근단(79)씨는 "이 노래는 유족들에게 애국가와 같은데 왜 못 부르게 하느냐. 정부가 이렇게 5ㆍ18을 홀대해도 되느냐"며 통곡했다.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유족들에게 생채기만 안겨준 채 두 쪽으로 갈라졌다. 5월 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식장에서 당시 불린 행진곡 제창이 금지되고, 어처구니 없게 축하 화환이 배달되는 소동으로 유족들의 가슴은 만신창이가 됐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5ㆍ18민주묘지 내 추모탑 앞에 2,600여 개 좌석을 마련했지만 절반 이상이 텅텅 비었다. 유족과 피해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본행사에서 배제된 데 대한 항의로 기념식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유족과 시민 등 1,500여명이 참석한 기념식장은 행사 시작 15분 전부터 술렁이기 시작했다. 올해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식순에서 빠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모르고 온 유족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 묘역 입구 '민주의 문' 아래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20여분간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부르며 추모곡 시위를 벌이던 유족들은 다시 기념식장으로 발길을 옮겼지만 경찰의 벽에 막혔다. 대신 유족들이 빠진 기념식장에는 여야 정치인들과 경찰관들이 자리를 매웠다.

같은 시각 5ㆍ18 구 묘역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5ㆍ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가 '임을 위한 행진곡' 배제에 반발해 유족과 5월 단체 회원 등 500여 명과 함께 따로 기념식을 가진 것이다. 기념식이 끝난 후 국가보훈처는 "5ㆍ18의 전국화와 세계화라는 30주년 기념행사 기획의도에 맞지 않아 본 행사에서 뺐다"고 해명했지만 유족들의 항의는 계속됐다.

유족 박현순(64)씨는 "30년 전 군홧발에 다시 짓밟힌 기분"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광주의 아픔과 5월 정신을 담은 이 곡을 못 부르게 한 것은 5월 광주의 기억을 지우겠다는 의도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5ㆍ18 기념식순에서 제외된 데 대해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야당은 "5ㆍ18 정신을 폄훼하는 처사"라며 강하게 비난했고, 여당 일각에서도 "미숙한 조정능력"이란 유감 표명이 나왔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엄숙해야 할 기념식장에서 노래 한 곡 부르냐, 안 부르냐를 갖고 분위기를 망친 그 미숙한 조정능력에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이날 서울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30주년 기념식에 축하 화환을 보냈다가 1시간여만에 조화(弔花)로 교체하는 소동을 빚었다. 5ㆍ18부상자회의 한 관계자는 "조화와 화환도 구분 못하는 사람이 여당 대표냐"고 울분을 토했다. 정양석 대표 비서실장은 "실무자의 착오로 일반 행사에 보내는 화환이 전달됐다"며 "부적절한 행동을 한 데 대해 머리 숙여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안경호 기자

■'임을 위한 행진곡'

5ㆍ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씨와 1978년 숨진 야학동료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을 담은 노래굿 테이프'넋풀이'(일명 빛의 결혼식)을 통해 알려졌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이 노래굿 마지막에 백기완씨의 시 '묏 비나리'를 각색하고 당시 전남대생 김종률씨가 작곡한 것으로, 이후 집회와 시민행사 때 빠지지 않고 불려 민중의례로 자리잡은 곡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