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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릴라 이윤택의 To be or Not to be] <17> 꿈과 현실 사이에서 시를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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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릴라 이윤택의 To be or Not to be] <17> 꿈과 현실 사이에서 시를 짓다

입력
2010.05.1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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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예술가란 어떤 존재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보들레르의 시 '알바트로스'를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알바트로스는 신천옹과의 조류로서 날개를 펼치면 가장 큰 바다 새입니다. 날개를 편 길이가 3~4m나 되는데 날개를 펼친 그대로 높이 솟아올라 몇 십 ㎞까지 단숨에 비행한다고 합니다. 매년 짝짓기 철이 되면 수많은 무리들이 한곳에 모이지만 일생 동안 단 한 상대하고만 짝을 짓는 순결한 새이기도 합니다.

보들레르는 바다 위를 나는 새 알바트로스의 환상적인 모습에 감탄하는 선원들의 모습을 먼저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 힘차고 아름다운 새가 갑판에 내려앉으면 다리가 짧아 잘 걷지도 못하고 뒤뚱거리는 못난 새라는 사실을 보여주지요. 선원들은 그토록 감탄했던 아름다운 비상의 기억은 잊어버리고 갑판 위에 내려앉은 새를 학대합니다. 발로 차고 개 목걸이를 해서 질질 끌고 다니다가 죽여 버립니다.

제게 예술은 비천하고 어두운 현실을 뛰어 넘는 '힘차고 아름다운 날개 짓'이었습니다.

나는 기름이다 /이마 위에 성냥을 그으면 /흰 쟁반에 받쳐 든 /한 아름의 몸부림 /밤을 넘는 자여 /내 타고 남은 잔뼈를 /그믐의 가지 끝에 걸어다오

-졸시 '도깨비불' 전문

밤길 행군 중에 도깨비불을 만났습니다. 저는 화들짝 놀라 낮은 포복 자세를 취했고, M16총구를 겨냥했더랬지요. 장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길 흰 옷을 입은 여인이 나무 가지 위에서 느릿하게 춤추는 모습을 대하는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간이 그냥 쿵 내려앉은 것이지요. 저는 비로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목격한 것입니다. 저는 연대 기동훈련 행군 대열에서 이탈한 채 밭두렁 진흙탕에 처박혀 밤을 지새웠습니다. 몸은 점점 물구덩이 속으로 묻히는데 고함을 쳐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문득 시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이 공포감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너울너울 춤추는 귀신을 조금씩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단어 한 줄씩 시를 써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짓고 허물고 다시 적절한 언어를 생각하다 보니 새벽이 오고, 귀신은 사라졌습니다. 귀신이 사라진 자리에 벼락 맞은 나뭇가지가 속을 드러낸 채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행군 이탈 죄로 심하게 기합을 받았고, 덕분에 시 한편을 얻었습니다.

지구본이 돌고 있다.

영사막의 한 점 속에 빨려 들어가는 지구

하나 둘 별이 돋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다.

교사의 안경테 속에 담긴 영사막

교사는 집게 손가락으로 우주를 가리킨다.

빈 교실

-졸시 '천체수업' 전문

이 시는 제가 마산 한일합섬 염색가공과 염색기사로 일할 당시에 썼습니다. 하루 여덟 시간을 선채로 오스트리아제 염색기에 염료를 부어 넣는 일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조장은 여성 근로자 엉덩이를 만지고 음란한 농지거리를 해댔습니다. 나이 사십이 채 안된 고참 기사는 얼굴색이 노랗게 변했고 머리털이 빠졌습니다. 우리가 부어 넣는 염료 속에 아황산 냄새가 심하게 나고, 그 냄새가 우리의 몸을 부패시키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양덕동 자취방에서 이 시를 지었습니다. 그날은 한겨울인데 연탄불이 꺼져버렸습니다. 추위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 남몰래 간직하고 있는 기억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 '에덴의 동쪽'에서 본 장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멕시코 계 소년은 천체수업 시간에 별안간 책상 밑에 기어 들어가 울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어떤 공포감이 그 소년을 울게 했을까? 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오늘 밤 풀어볼 생각이었지요. 그리고 비슷한 공포감을 체험한 고등학교 시절 처음 개설된 지학(地學)시간 우주와 천체 수업이 떠올랐습니다. 그 무한광대 한 우주공간 한 모서리에서 한없이 초라하고 왜소한 모습으로 제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밤새워 쓴 시 초고가 40행을 넘었습니다. 저는 날이 밝자 뿌듯한 포만감으로 행복했습니다. 내 비록 남루한 공장 근로자로 살지언정 광대무변한 우주를 노래하는 위대한 개인이노라.

그러나 대작을 지었다고 큰 소리 치던 내 시는 점차 지워져서 마지막 열 줄만 남았습니다. 시인 이형기 선생을 부산 백조다방에서 우연히 뵙고, 충동적으로 다가갔습니다. 시를 쓰는 청년인데 제 시 좀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랬더니, "지금 보지"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즉석에서 메모지에 이 시를 휘갈겨 써 보여 드렸습니다. 선생은 슬쩍 보시더니, "이왕 지워 나갔으니 마지막 행도 지우지 그래" 그러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행은 '뭍으로 튀어 오른 새우'였습니다. 이 마지막 행이야말로 내 존재의 저항적 몸짓이었습니다. 나는 빈 공간 속에 튀어 오르는 새우다!

저는 며칠 고민 끝에 제가 가장 아끼는 마지막 행을 지워 버렸습니다.

이 두 편의 시가 저를 시인으로 데뷔시켜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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