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7일 라디오연설을 통해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앞으로도 계속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비상경제정부'유지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리먼사태 이후 지난 1년 반 동안 경제정책운용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면서 성공적인 위기 극복의 선봉에 섰다는 평이지만, 과연 앞으로도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반론이 많다. 우리 경제가 위기 이전의 탄탄한 회복세를 밟고 있는 지금, 자칫 정상적인 경제 운용에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는 성공적
글로벌 금융위기 한 복판에서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었던 작년 1월2일.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국정연설에서 '비상경제정부'운영을 선언했다. 경제위기 조기극복을 위해 총력 체제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것. 그 후 일사천리였다. 불과 나흘 뒤 청와대 지하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이 구축됐고, 매일 새벽 일일 경제상황보고서를 작성했다. 다시 이틀 뒤 대통령이 주재하는 첫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열렸다.
비상경제대책회의는 지금까지 6개월씩 두 차례 연장되며 1년 반 가량 동안 총 58회가 개최됐다. 부득이한 사정을 제외하곤 거의 한 주도 거르지 않았고, 특히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열린 회의에 단 한 차례도 불참한 적이 없을 정도로 강한 애착을 보였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작년 우리 경제는 예상을 뒤엎고 플러스 성장(0.2%)을 한 데 이어 올해는 5~6% 고성장이 기대되는 상황.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회복하는 나라"라는 국내외 호평이 이어진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 지하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을 구축하고 대통령이 회의를 직접 챙기는 등 위기 의식을 고취한 것이 적잖은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비상이냐, 평시냐
정부는 당장 '비상'을 해제하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모양이다. 섣불리 비상 해제를 했다가 그리스 등 남유럽 사태가 확산된다면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라는 단서를 단 것도 이런 맥락. 여기엔 비상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신속한 의사결정 등 업무처리가 훨씬 수월하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남유럽 사태가 어떻게 진전될 지 알 수 없는 만큼 비상경제정부 체제 연장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객관적 상황만 놓고 보자면 지금 우리 경제를 비상상황이라고 보긴 어렵다. 6%에 육박할 것으로 보이는 성장률은 물론 소비, 투자, 그리고 심지어 고용까지 대부분의 경제 지표들이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한 상태. 윤석헌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 경제지표만 놓고 보자면 (비상상황이 아니라) 평시 체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경제정책 족쇄될라
이러다 보니 회의 내용 역시 초기처럼 긴박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중장기 인력 수급전망과 정책과제'(5월12일) '뿌리산업 육성방안'(5월6일) 등 최근 비상경제대책회의의 안건들은 '비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비상경제상황실 수장도 이수원 전 실장이 특허청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추경호 경제금융비서관이 겸임하는 자리로 전락했다.
비상경제정부 체제 하에서 운용되는 장관급 회의체인 위기관리대책회의도 사정은 마찬가지. 지금까지 60차례 회의가 운영됐지만, '해외 자원 개발' '외국인 환자 유치' '전자통관 시스템 수출' 등 안건 자체의 긴박성은 크게 떨어진다. 굳이 '비상경제' '위기관리'란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비상경제정부 체제가 자칫 정상적인 경제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론 '비상체제 지속'를 선언해놓고 다른 한편으론 출구전략 등 평상시 경제정책으로 전환한다면, 그 자체가 모순이자 정부 스스로 자가당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상체제'자체가, 경제정책의 정상화에 족쇄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적어도 비상정부체제가 유지되는 한 출구전략은 쉽지 않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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