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0년이 됐다. 발생 초기 북한의 사주를 받은 불순한 무장폭도들의 난동으로 왜곡됐던 5ㆍ18은 그 동안 우리 현대사에 다시 있어선 안될 비극이라는 식의 애매한 수사적 평가를 거쳐, 마침내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역사적 계기로 자리매김됐다. 5ㆍ18 폭력진압으로 탄생한 정권의 대통령들이 줄줄이 법의 심판을 받고, 폭도로 매도됐던 이들은 민주화 유공자로 명예를 회복했으며, 염원이던 민주화는 적어도 절차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뤘다.
돌이켜보면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은 역사의 필연이었다. 직접적으로는 당시 신군부의 집권 획책에 대한 학생 시민의 저항으로 촉발됐지만, 큰 틀에서 보면 수십 년간 지속된 군부권위주의 통치체제와, 산업화 과정에서 이미 거대하게 성장한 시민사회와의 피할 수 없는 충돌이었다. 비록 군부의 유혈진압과 정권 장악으로 성과는 잠시 유예됐으나, 이때 확인된 시민사회 일반의 민주적 역량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에 민주화 시대를 확고히 열게 한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5ㆍ18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정확한 발포책임자가 규명돼 있지 않고, 국가배상이 말끔히 마무리되지 않았으며, 총체적인 과거사 정리도 완결되지 않은 데다, 당시 희생자와 유족들이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치체제가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역량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고, 성과와 효율을 앞세운 권위적 정치문화 부활, 사회경제적 불평등구조 심화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시민사회 역시 격정적 의사표현 대신 토론과 타협에 기반한 합리적 민주주의를 감당할 만큼 성장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당시 상황을 악용한 세력에 의해 더욱 나빠진 이념 및 지역갈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30년 전 이 나라 민주화의 초석을 놓았던 5ㆍ18의 의미를 여전히 무겁게 인식하고, 그 정신의 발전적 계승을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이유다. 민주영령들의 고귀한 희생 앞에 다시 삼가 옷깃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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