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천안함 관련 사설에 할 말이 있다는 독자의 전화를 받았다. 수인사를 하자마자 대뜸"오늘 아침 사설 누가 썼느냐"고 묻는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민주당 추천위원 신상철씨의 일탈을 다룬 제목의 사설이다. 신문을 대표하는 사설의 필자는 원래 공개하지 않는다고 일러주면서도 불쾌했다. 독자는 신문에 소중하지만, 자신은 숨긴 채 은근히 위압적으로'사설 쓴 사람'부터 찾는 이는 대개 의도가 불순하다. 사리를 좇아 시비를 따지기보다, 틈만 나면 거친 욕설을 퍼붓는다.
그래서 일부러 즉석 논쟁으로 갔다. 일방적인 욕지거리를 듣고 혼자 화를 삭이는 결말을 피하고 싶어서다. 그게 독자에 대한 도리이기도 하다. 전화 건 이의 주장을 간추리면, 신씨가 언론에서'천안함은 좌초했다가 미 군함과 충돌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해서 조사단에서 빼라고 쓴 것은 편파적이라는 것이다. 그는"한국일보도 어쩌다 조중동처럼 됐느냐"고 지레 개탄했다.
천안함 참사 틈타 사익 추구
나는 신씨가 국가적으로 중대한 조사단 위원을 맡았으면, 진상조사를 위해 성실히 힘써야 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아무리 애써도 조사단 활동이 진실 규명과 거리 멀다고 판단했다면, 위원을 사퇴하고 소신을 밝히는 게 정당한 처신이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신씨는 그런 과정 없이 일찍부터 라디오 방송 등 진보 매체에 나가 조사단의 공식 견해와 동떨어진 주장을 되풀이했다. 따라서 애초 조사위원의 의무 등을 규정했어야 할 조사단은 이제라도 그를 공개 배척해야 옳다고 일깨운 게 사설의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논쟁이 접점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결국 그 독자는 논쟁 막바지에 이르러 합동조사단의 공식 견해인 '수중폭발'의 증거가 없다는 주장을 고집했다. 그밖에 신씨의 공적 책임과 처신의 정당성 등은 논쟁 대상으로 삼기를 거부했다. 그 고집스러운 인식에는 지금껏 지진파 등으로 확인된 것은'수중폭발'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틈이 없었다.
독자 한 사람과의 논쟁을 장황하게 이야기한 이유가 있다. 그는 인터넷 댓글 등에서 황당한 주장을 떠드는 이들에 비해 훨씬 진지하고 나름대로 진정성이 있었다. 그런 이들조차 확인된 사실과 합리적 추론을 외면한 채 황당한 선정적 주장에 귀 기울이고, 그 것을 유일한 진실로 믿는 우리사회의 현실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천안함 사태는 이런 성찰과 각성에 더 없이 좋은 기회라고 본다.
결론부터 말해, 천안함 사태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을 이념적 성격이나 차원으로 보지 않는다. 애써 근원을 천착하면 더러 이념이나 신념 수준에 이를지 모르나, 대부분 개인과 집단의 이기적 동기가 앞선다고 본다. 단적인 사례가 바로 진보 인터넷 매체의 대표인 신씨와 같은 인물이다.
그의 처신과 언행에서 천안함 침몰의 진실을 열심히 찾거나 남북의 장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국가적 참사, 딜레마적 사태를 틈타 개인적 이익을 좇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몰염치가 두드러진다. 언론을 비롯한 극우보수세력의 그런 습관을 '안보 상업주의'라고 부르는 게 적절하다면, 이건 '진보 상업주의'로 규정할 만하다. 그런 표현이 마땅한지 찾아보았더니, 이미 오래 전 그리 부른 진보적 학자가 있다.
파렴치한 궤변 응징해야
문제는 신씨가 최악의 사례가 아니라는 데 있다. 남북관계와 민족의 장래 등을 깊이 고민하거나 연구한 자취도 없는 이들이 천안함 사태의 심각성과 동떨어진 궤변과 요설을 일삼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터무니없는 미군 핵잠수함 충돌설 등을 떠드는 철없는 무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공직선거에 나선 정치인이 슬며시 이를 되뇌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
처세에 약삭빠른 이들이"북한 소행이더라도 정부 책임"이라는 논리가 지독한 궤변임을 스스로 깨닫지 못할 리 없다. 이런 파렴치를 제재하는 것이 '북한 응징'보다 실속 있는 일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