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세기에 걸친 민주화운동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넘어 문화로서의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는 없는가 하는 물음과 통한다.
최근 출간된 (휴머니스트 발행)는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대학원 교수,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진중권 전 중앙대 교수,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등 12명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현실을 진단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지난해 11~12월 필자들이 민주주의를 주제로 진행한 특강의 내용에 바탕했다. '공공의 정치' '소수자의 위상' '학벌사회' 등 다양한 프리즘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들여다본다.
이들이 현실을 보는 틀은 다양하지만, 민주주의 위기 극복을 위해 강조하는 지점은 '깨어있는 시민'이란 데 맞춰져 있다. 도정일 교수는 "한두 번의 민주정권 실현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안착시킬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며 구체적 문제와 이슈 중심의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민교육이란 예컨대 전교조 교사 명단을 공개할 수 있는가 없는가, 국가기관이 학생의 성적을 공개할 수 있는가 없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 개개인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사고력을 길러주는 교육이다. 도 교수는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사유와 행동의 모색, 그것이 시민교육의 내용이고 목표이다"라고 말했다.
박명림 교수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국가가 탈공공화, 사사화, 시장화된 것"이라고 요약한다. 박 교수는 사익의 표상인 'CEO 담론'이 유행하면서 이 담론에 의해 정권이 교체된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함축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공공성을 회복하여 개인 삶의 공공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보장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며 "공적 문제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사회를 바꾸고 내 삶도 예측가능하게 창조하는 시민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각 장의 말미에 특강에 참여한 청중과의 질의응답 내용을 정리한 '한국 민주주의를 묻고 답한다'도 실어 생생하고 구체적인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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