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통치약입니다.”
지난 2월 28일 오후 집으로 가던 김모(64)씨는 서울 약수역 앞에서 한약재를 파는 좌판상이 외치는 소리에 귀가 솔깃했다. 무릎관절염을 오랫동안 앓아온 김씨는 그간 백약이 무효였던 지라 한동안 살까 말까 고민했다. 어느새 김씨 주위로 4, 5명이 몰려들었고 이들 중 이모(72)씨는 “이 약 먹고 아버지의 아픈 데가 나았다”며 김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김씨는 호주머니에 있던 3만원과 은행에서 찾은 20만원을 합쳐 중국산 보골지 한 근(600g)을 샀다. 이후 하루에 30g씩 10일 동안 매일 복용했지만 김씨의 관절염은 더 악화했고 결국 3월 초 병원에 입원해 최근까지도 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7일 값싼 중국산 약초를 만병통치약이라며 노인들에게 수백만원에 팔아온 50~70대의 할머니 사기단 7명을 적발, 총책인 천모(67)씨 등 4명을 구속하고 망을 본 이모(59)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천씨 등은 2009년 2월~2010년 5월 서울 경동시장에서 중국산 보골지를 600g당 1,500원에 구입한 뒤 이를 20만~200만원을 받고 노인 200여명에게 팔아 3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보골지는 발기부전과 양기회복 약제로, 과다 복용하면 급성간염 등 부작용이 있다.
경찰조사결과 할머니사기단은 판매책, 바람잡이, 망보기 등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인 사기행각을 벌였다. 총책인 천씨가 시장이나 지하철역 등지에 범행장소를 정하면 판매책인 주모(62)씨와 바람잡이 역할을 맡은 이씨 등이 지나가는 노인을 현혹해 물건을 사게 했다. 망설이는 노인들에겐 이씨가 자신도 구매자인 것처럼 속여 “반반씩 돈을 내 사서 나누자”며 구입하게 하는 등 능수능란한 수법을 썼다. 특히 폐지수집으로 생계를 잇는 한모(72)씨는 지난 1월 28일 이들로부터 보골지 1,200g을 구입하기 위해 보험금을 담보로 400만원을 은행에서 대출받는 등 세상물정에 어두운 저소득 계층의 노인들이 이들의 먹잇감이 됐다.
경찰은 “노인들은 나중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자식들로부터 질책 받는 게 겁이 나 신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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