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가로등이 하나 둘씩 불을 밝혔다. 된장찌개 냄새가 솔솔 피어 오르는 저녁 어스름의 주택가, 폭 1m도 안 되는 좁디 좁은 골목길을 누군가 후다닥 훑고 지나갔다. 남은 건 음식물쓰레기에서 새나온 악취와 구정물뿐이었다.
13일 오후 6시부터 새벽녘까지 서울 성북구 일대 주택가를 2.5톤 쓰레기수거트럭에 올라 환경미화원 채혁병(57) 최원철(51)씨와 동행했다. 잘 나가던 신발공장 사장이었다가 외환위기 탓에 빈털터리가 된 채씨나 어릴 때 사고로 정신지체 장애를 앓은 최씨나 다 남모를 아픔을 가슴에 묻어두고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7년째다.
출발 전 두 사람은 "가장 더러운 것을 치우는 가장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웃었다. 둘은 성북구청에서 위탁한 민간업체 소속이다. 2인 1조로 평균 4, 5개 동을 담당한다. 성북구 월곡1, 2동, 길음1, 2동, 정동1동의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 1만가구가 이들의 무대다.
더럽지만 아름다운 일, 그러나
차에 오르자 둘은 환경미화원도 급이 나뉜다고 했다. 구청 소속인 직영직원과 자신들처럼 위탁업체에 고용된 신세가 있다는 것. 채씨는 "'젊은이들 몰리네, 박사도 지원했네, 경쟁률이 하늘에 별 따기네' 등 언론에 등장하는 환경미화원은 직영"이라며 "위탁은 일이 더 고된 반면 수입은 적고, 정규직 비율이 적어 50, 60대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실제 위탁업체 직원들은 주말을 제외하고 주 5일 매일 8시간 이상 꼬박 일하지만 야근수당 식비 등을 포함해 150만원(세후)의 월급을 받는다. 직영의 60%수준이란다. 업무차별도 심하다. 지난해 6월 기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76%가 민간업체에 생활폐기물 수집 및 운반 업무를 대행하게 하고 있다. 직영은 주로 재활용쓰레기를 처리한다.
최씨는 "비교적 가볍고 수거가 쉬운 재활용에 비해 각종 생활폐기물과 음식물쓰레기 등의 수거작업은 노동강도나 업무환경 면에서 더 열악하다"고 말했다. 둘은 이날도 동네 곳곳을 돌며 생활 및 음식쓰레기를 모아갔다.
작업시간부터가 이들에겐 고역이다. 규정상 생활폐기물 수거는 낮 시간대의 쾌적한 주민생활과 교통체증 방지를 위해 오후 6시부터 허락된다. 그러나 밤엔 골목마다 퇴근한 차량들이 줄지어 주차된 탓에 쓰레기수거차량 진입 자체가 어렵다. "밤 늦은 시간엔 작업차량을 동네 입구에 세워두고 직접 발로 수㎞ 거리를 오르락내리락 해요."
교통사고도 부지기수다. 대부분 덩치가 큰 트럭을 몰고 골목에 들어섰다가 돌아 나오지 못해 생긴 접촉사고다. 책임도 면키 어렵다. 채씨는 "큰 사고는 회사 보험금으로 처리하지만, 작은 긁힘이나 접촉사고는 제 돈으로 합의를 봐야 일에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3일에 한 번 꼴로 사고가 난다고 했다.
가끔 주민들의 고약한 말투는 이들의 속을 긁어놓는다. 이날 유모차를 끌고 가던 한 부부는 "쓰레기아저씨, 이거 여기다가 두면 되요?"라며 쓰레기봉투를 차 앞에다 두고 냉큼 사라졌다. "쓰레기를 치운다고 내가 쓰레기도 아닌데 '쓰레기아저씨'라고 부르는 건 마음이 좀 그렇습디다."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동네 인심이 바짝 마르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 쓰레기를 가득 실은 트럭이 지나가자 튀김집 주인은 "이거 들고 가요"라며 튀김 한 봉지를 선뜻 내주고, 통닭집 사장은 "장사가 안돼도 자네들 챙겨줄 건 있어" 하며 통닭 한 마리를 포장해 차창 안으로 던졌다. 고단함이 스르르 녹았다.
화장실 변기보다 지저분한 작업복
새벽 2시 무렵, 2.5톤 트럭에 쓰레기를 가득 싣고 집하장에 내려놓기를 다섯 차례. 이곳엔 위탁업체 환경미화원 25명이 일주일간 모아온 음식물쓰레기 200톤, 생활폐기물 240톤, 연탄재 40톤, 공장폐기물 50톤이 쌓였다. 밤공기는 오싹한 데 두 사람의 얼굴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두 다리도 후들거린다.
일을 끝내고 작업복을 벗는 최씨의 목덜미에서 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툭 떨어졌다. 장화 속과 고무장갑 안은 음식물쓰레기에서 나온 썩은 물로 이미 흥건해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쓰레기 냄새가 진동한다. 최씨는 "여름이면 더 심해요. 얼굴에 구더기가 기어 다닐 때도 있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상황이 이럴진대 샤워시설은커녕 화장실조차 없다. 일이 끝난 이들은 집하장 마당에 달랑 하나 있는 수도꼭지에서 손과 목덜미와 얼굴, 장화를 헹궈냈다. 옷도 갈아입었지만 악취는 딱 달라붙어 있었다. 누군가 푸념했다. "직영들 일하는 곳엔 샤워장이 있는데…."
지난해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환경미화원 안전보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화장실 변기에서 발견된 10㎠당 박테리아 수는 3,800여개인데 비해 위탁업체 환경미화원의 작업복과 얼굴 등에서 나온 10㎠당 박테리아는 82만4,200여개. 무려 217배 차이다. 또 위탁업체 미화원의 산업재해율은 16.8%로 국내 평균(0.7%)의 24배에 달했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은 "위탁업체 환경미화원 대부분이 위생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감염성 질환 등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며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세탁시설을 비롯한 위생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악취를 잊기 위해 술을 거나하게 걸쳤다. 하지만 냄새 때문에 대중교통도 이용 못한다며 상계동의 집까지 장장 두 시간을 걸어 갔다. 칠흑 같았던 밤은 어느 새 먼동에 자리를 물려주고 있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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