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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작가 하창수-이나미, 나란히 3번째 단편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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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작가 하창수-이나미, 나란히 3번째 단편집 출간

입력
2010.05.1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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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에 등단, 각자 개성있는 작품세계를 펼쳐온 소설가 하창수(50), 이나미(49)씨가 나란히 세 번째 단편집을 냈다. 하씨가 장편 (2002) 이후 8년 만에 발표한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발행), 이씨가 단편집 이후 6년 만에 펴팬 (랜덤하우스코리아 발행)가 그것이다. 오랜만에 작품집을 낸 두 사람은 곧 후속작 출간 계획도 밝히며 활발한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 '서른 개의 문을 지나온 사람'

하창수씨는 존재, 욕망, 언어, 종교 등 지적이고도 폭넓은 주제의식, 서정성 강한 개성적 문체로 1990년대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하나로 꼽힌다. 그가 단편집으로는 (1994) 이후 16년 만에 낸 엔 1995~2006년 발표한 10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10여 년의 시간에 걸쳐 있는 만큼 이들 작품의 주제와 스타일은 그야말로 다채롭다.

“내가 이토록 말(言)의 문제에 집착해 왔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는 작가의 출간 소감처럼 이번 소설집엔 언어와 소설의 본질에 대한 그의 집요한 탐구를 보여주는 작품이 여럿이다. 예컨대 ‘천지소설야’는 한문 고전의 문투로 소설의 기원과 그 타락상을 표현한다. 작중 화자는 “인간이 처음 (땅에) 발을 디뎌 짐승과 사귀는 데 딱 여섯 소리만을 썼다”며 명확한 소통을 위해 표현을 아꼈던 것이 소설(언어)의 본래 정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설이 말이 많아지더니 급기야 “(세속의 일인) 왕사(王事)에 골몰”하며 오지랖을 넓히는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맞았다고 일갈한다.

말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은 “예수는 실패한 소설가다”라는 파격적 명제로 시작하는 단편 ‘성자가 된 소설가’로 발전한다. 이 작품은 세례 요한을 스승으로 모시기 위해 집을 떠나 광야로 향하는 예수의 생애를 전기수(傳奇叟ㆍ구술소설가)의 그것으로 대체한다. 하씨는 “예수, 부처, 소크라테스, 공자는 삶에 대한 탁월한 해석자이자 웅변가였고, 무엇보다 그 실천자였다는 점에서 소설가의 전범을 보여준다”고 이 소설의 착상 계기를 밝히기도 했다.

그의 소설에서 언어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종교(기독교)다. 신에게 닿을 만큼 높은 건축물을 만들겠다는 인간의 무모한 욕망으로 인해 본래 하나였던 언어가 여러 종류로 갈려 불통(不通)과 불화를 낳았다는 바벨탑 일화를 차용한 ‘천년부’를 통해 작가는 ‘신의 섭리’로 불리는 것의 발원지는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하씨가 지난해 계간 작가세계에 연재한 장편 ‘예수암살사건’ 역시 성경에 묘사된 예수의 생애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의 산물이다.

표제작은 목소리를 잃어버린 전직 대학 강사가 절망을 딛고 생의 의지를 회복해가는 과정을 차분하게 그린 작품이다. 가장 최근에 쓰여진 ‘엑스 존’은 자살 시행을 돕는 국가 의료 기구가 있다는 설정 아래 삶과 죽음, 사랑의 문제를 탐구한 작품으로 하씨의 작품 중 이례적으로 과학소설(SF) 풍의 소설이라 눈길이 간다. 등장인물들이 서로에 대한 관찰기를 써내려가는 독특한 형식의 ‘추상화’도 흥미롭다.

■ '수상한 하루'

이나미씨의 엔 2008년 김준성문학상 수상작인 '마디'를 비롯한 9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이씨의 이번 소설집은 소외된 자들의 힘겹고 고단한 현실을 다룬 작품이 많다는 점에서 전작 와 궤를 같이하면서도, 삶의 대극(對極)이 아닌 그 일부로서의 죽음의 문제에 천착했던 전작에 비해 한층 인물과 서사를 강화해 작품의 리얼리티를 높였다. 독자에게 한결 흡인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대구지하철 참사를 배경으로 한 '자크린느의 눈물'은 지하철 행상으로 생계를 꾸리다가 비명횡사한 전직 대기업 간부가 주인공이다. 작가는 그가 구조조정 때 받은 퇴직금으로 사업을 벌였다가 실패한 뒤 식당일을 하는 아내 몰래 행상을 시작한다는, 익숙한 설정에서 한 발 더 나간다. 불 붙은 차량의 출입문을 잠근 채 저 혼자 피신한 기관사, 높은 분들께 흉한 꼴 보이면 안된다며 유해와 유류품이 즐비한 사고현장의 잔해를 포클레인으로 치워버리는 공무원 등의 행태를 선량한 시민들의 무참한 떼죽음과 인상적으로 대비시키며 차원높은 사회소설을 선보인다.

'집게와 말미잘'에서 밑바닥 인생의 두 남녀는 인터넷에서 제 신분을 한껏 꾸미며 교제한다.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어렵게 모은 재산을 사기 당할 위기에 처한 남자는 성공한 재미 사업가인 척하고, 아픈 몸으로 매장 계산원으로 일하는 ㈏渼?환자로 병원을 드나들 때 들은 정보로 개업의사 행세를 한다. 암담한 현실을 잠시라도 잊고자 스스로와 상댕방을 속이는 비루한 자들의 공생이다. 다른 작품으로 군에서 자살한 남자를 동생으로 둔 여자('푸른 푸른'), 병실에서도 이기심을 채우려 이전투구하는 아줌마 환자들('모시 바구니') 또한 인생의 팍팍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러시아문학자이기도 한 작가 이씨는 "푸쉬킨, 고골,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에 이르기까지 19세기 러시아문학은 사회계급의 가장 밑바닥에서 선량한 품성을 잃지 않은 채 고통받는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뤘다"는 말로 자신의 소설적 관심사를 밝혔다.

그렇다고 '작은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이름의 출구마저 봉쇄된 것은 아니다. '마디'의 주인공은 어릴 적 어머니의 실수로 한쪽 청력을 잃었고 마흔 살 되던 해 10년 간 겨우 지켜온 음대 강사 자리마저 잃어버린 여자. "하다못해 음악학원 강사를 했어도 이보단 나았을 것"이라는 회한에 제 귀를 망친 엄마를 향한 반발심을 겹쳐놓으며 충동적으로 머리를 삭발해버린 그녀의 휑한 마음에, 그러나 뜻밖에도 "난 이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결연한 생의 의지가 들어찬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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