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의 참상을 보는 것 같다.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로 쌓은 타이어들을 태우자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고, 그 사이로 무장한 헬기가 지나며 시위대를 위협했다."
영국 방송 BBC 특파원이 묘사한 15일 오후 태국 방콕 라차프라송 거리의 모습이다. '레드셔츠'시위대의 지도자 한 명이 13일 의문의 총격을 받으면서 격화된 반정부 시위대와 군경의 충돌. 나흘 만에 31명이 희생된 유혈의 현장은 점점 전쟁터를 닮아가고 있다.
BBC는 "목격자들에 따르면 군경이 자동화기를 동원해 시위대를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부상자들 가운데에는 캐나다 국적의 기자 등 시위와 관련 없는 이들도 섞여 있어 무차별 진압에 대한 공포가 방콕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군 당국은 "자위 차원에서만 실탄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외신들이 제공하는 사진들에선 무기를 들지 않은 시위대의 시신(조준사격을 받은 듯 대체로 머리에 총상을 입음)이 확인되는 등 군경의 주장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16일부터 정부는 시위대 해산을 위한 본격 작전에 돌입, 이전의 사태와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 유혈극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고조됐다. 군 당국은 비록 시행에 옮기진 않았지만 이날 중 시위대 점거지역인 라차프라송 일대를 비롯한 방콕 주요지역에서의 통행금지 실시를 한때 예고하기도 했다. 방콕 내 모든 학교의 개학을 1주일 연기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 같은 군경의 강제해산 작전 임박 징후가 이어지자 시위 지역에 위치한 출라롱콘 병원은 17일부터 진료를 전면 중단키로 했고, 이미 14일부터 업무를 중단한 미 대사관은 직원, 가족들을 피신시켰다.
태국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잇따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5일 성명을 통해 "인명피해를 막기 위한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도 "모든 당사자가 절세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피싯 총리는 16일 대국민 연설에서 "강도 높은 무장 대응의 필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하며 시위대 해산에 앞선 군경 철수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해서도 "태국 내부 문제이니 외국 개입은 도움이 안 된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시위대는 태국에 중립적인 단체가 없다며 유엔의 중재를 호소하고 있다.
정부의 강경 해산 작전이 가시화하자 일단 16일 오전 시위대의 대응은 잠잠해지는 듯했다. 외신들은 "비교적 조용했으며 시위대 규모는 수천 명 정도"라고 전했다. 하지만 정오를 지나며 시위대는 다시 늘었고 이들은 타이어와 죽창으로 만든 바리케이드를 정비하고 불을 피우면서 곳곳에서 군경과 부딪혔다. 이들은 단전, 단수로 버티기 힘든 상황임에도 군경과의 일전을 대비해 총알을 막아줄 진지를 구축하고 참호를 팠다.
상황이 긴박해지자 레드셔츠 지도자 나타웃 사이쿠아는 "정부와 협상할 용의가 있다"며 "정부가 휴전을 선언하고 병력을 철수한다면 시위대도 폭력시위를 철회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정부 측은 "시민들이 아닌 무기를 든 테러리스트를 겨냥하고 있다"며 군대를 철수할 의사가 없다며 협상을 거절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