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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미래의 영감'을 위한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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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미래의 영감'을 위한 격려

입력
2010.05.1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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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백만장자가 된 노벨이 1896년 임종하기 전에 전 재산을 기증하며 노벨상을 제정하도록 유언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노벨상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의 발전에서 상이 갖는 기능과 역할이 시대에 따라 변해온 것을 보게 된다.

1901년 1회 노벨상이 수여된 후, 20세기 전반기에는 젊은 과학자들의 수상이 자주 목격된다. 하이젠버그는 31세, 보어는 37세, 아인슈타인은 42세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양자물리학의 대두와 상대성이론의 출현 등 혁명적 발전이 이뤄지던 이 시기에 새로운 사고의 틀과 영감을 제공하던 젊은 학자들을 노벨상이 인정했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젊은 학자들이 노벨상 수상을 통하여 당대 학계의 전면에 부상하고 노벨상 명성으로 연구비 확보 등이 용이해져서 더 나은 연구 환경을 갖게 되는 선순환 효과가 생겼다.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통하여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고 역할 모델이 필요한 젊은이들에게 미래의 지향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국가과학자 지정 등 과학상을 만들고자 하는 여러 노력이 있는데, 이러한 상의 역할을 참조할 필요가 있겠다.

20세기 후반부에는 젊은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을 보기 힘들다. 정상 과학기(normal science)가 도래하면서 젊은 과학자들이 획기적인 영향을 끼치는 게 힘들어지고, 축적된 업적이 상대적으로 중요해진 탓으로 해석되곤 한다.

노벨상에는 수학 분야의 상이 없다. 중세 유럽적 전통에서 철학, 신학, 물리학 등과 강한 유대를 가지며 과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수학의 역할에 비춰, 노벨상 제정이 발표된 1897년 당시 수학의 누락은 의외의 일로 비쳤을 것이다. 노벨이 수학을 빠트린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당대의 스웨덴 수학자 미탁 레플러(Mittag-Leffler)가 노벨의 약혼자를 빼앗아가서 그가 수학자들을 혐오하게 된 탓이라는 설도 있지만, 여러 정황에 비춰 믿을 만하진 않다. 실용을 중요시하던 노벨의 개인적 성향 탓으로 보는 게 타당한 듯하다.

이런 이유로 1899년 경 독자적인 수학상 제정 논의가 시작되었다. 수학자들은 노르웨이의 전설적인 수학자 아벨(Niels Abel)의 탄생 100주년인 1902년에 아벨상을 제정할 것을 제안하고 노르웨이 왕의 동의까지 받았지만,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연맹 분리 등 복잡한 정치적 상황으로 실패하고 만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부터 2,000년 넘게 풀리지 않고 남아 있던 '임의 각의 3등분' 문제가 불가능함을 증명하고 27세에 요절한 천재 수학자 아벨의 이름을 딴 이 상은, 결국 100년이 지나 아벨 탄생 200주년인 2002년에 제정이 발표되어 이듬해에 첫 상이 수여되었다. 상금도 100만 달러로 노벨상과 비슷하다.

아벨상 제정의 일차 노력이 실패한 후 수학자들은 1936년 필즈상(Fields Medal)을 제정했다. 수학에서의 전통과 역할의 중요성 때문에 수학의 노벨상으로 회자되는 이 상은 4년마다 시상되고 수상 당시 40세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연령 제한이 있어서 노벨상과 확연히 구별된다. 이 상의 취지를 설명한 대목에 그 까닭이 나온다. "과거의 업적에 대한 인정뿐 아니라, 미래에 쌓을 업적을 통하여 인류에 기여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분야를 넘어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내용이 아닐까?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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