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이 유혈사태의 비극으로 빠져든 원인은 농민ㆍ서민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복귀 문제와 맞닿아 있다. 현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가 선거에 의하지 않은, 정당성이 떨어지는 정권이라는 점도 소요를 확산시키는 요인이다.
1949년 북부 치앙마이의 비단 판매상 아들로 태어난 탁신은 2001년 총선 압승으로 집권한 뒤 이후 3차례 총선에서 모두 승리했다. 2006년 쿠데타에 의한 축출과 2008년 부정부패 혐의로 두 차례 해외 망명길에 나서 현재 두바이 등지에 머물고 있다.
태국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따르면 탁신 전 총리가 축재한 재산은 766억바트(2조6,8200억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시위자들이 그의 복귀를 바라며, 반정부 투쟁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탁신은 집권 후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거의 무료화 했고, 장기저리 융자로 서민들을 지원했다. 무상교육, 사회기반시설 확충사업 등도 추진했다. 그는 집권기간 높은 경제성장을 이끌고 국민의 생활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면서 왕실, 엘리트 계층과는 거리를 뒀다. 탁신이 부패 의혹이 불거진 이후인 2006년 총선과, 쿠데타로 실각한 이후인 2007년 총선에서도 각각 승리한 사실은 서민층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충성도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태국 사태가 풀기 어려운 이유는 집권 세력이 바뀔 때마다, 계층갈등의 당사자들이 제도적 해결에 의존하기 보다 '거리'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실과 중산층 지지세력인 '옐로 셔츠(국민민주주의연대)'가 먼저였다. 2007년 총선에서 다시 승리한 탁신이 귀국해 재집권했다가 또 망명길에 나선 것도 부패 공판과 함께 '옐로 셔츠'시위 때문이었다. 당시 '옐로 셔츠'는 정부청사와 공항을 점거하며 탁신 정부를 무너뜨렸다.
그러다가 2008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탁신 집권당이 해체되고, 하원 내부 선거만을 거쳐 현 아피싯 총리가 임명되자 이번에는 탁신 지지단체인'레드 셔츠(UDDㆍ반독재민주연합전선)'가 나섰다. 지난 해에 이어 "의회 해산, 조기 총선"을 주장하며 올해 3월14일부터 다시 본격화된 시위는 '혈액 투척'까지 하며 강도를 높였고 최근 조기총선 타협안이 결렬되면서 최악의 유혈 사태를 맞고 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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