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 연방대법관에 지명된 엘리나 케이건(50) 법무부 송무담당 차관의 종교가 유대교인 것을 놓고 말들이 많다. 유대교라는 것 자체가 큰 뉴스는 아니나 그가 대법원에 합류하면서 9명의 대법관 중 개신교는 하나도 없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퇴를 선언한 존 폴 스티븐스(90)가 유일한 개신교 신자였으나, 케이건이 들어와 명맥이 끊긴 것이다.
대법관 인준 때마다 정쟁 양상
청교도의 나라에서 대법원에 개신교 신자가 하나도 없는 것은 좀 이상하다. 종교색이 판결에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개신교 일색이었던 과거 대법원을 생각하면 미국 사회가 많이 변했다는 증거일 수 있다. 한때 대법원에는 '종교 마이너리티', 좁게는 유대교와 가톨릭의 진입을 유도하기 위해 '유대석' '가톨릭석'이라는 지분이 있었을 정도였다.
미국 대법원에 달라진 것은 또 있다. 이들에 대한 의회, 특히 인준을 책임지는 상원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대법관 인준이 점점 정쟁의 도구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도 차이는 있으나 인준 때마다 정치적 셈법으로 대법관 지명자를 판단하려는 경향이 짙어졌고, 이는 인준 표결에서의 대결 양상으로 나타났다.
2006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새뮤얼 얼리토(60)는 역대 가장 적은 58표로 간신히 인준을 통과했고, 작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68표에 그쳤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지명한 스티븐스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의 앤토닌 스칼리아, 앤서니 케네디가 모두 만장일치였고, 빌 클린턴이 지명한 스티븐 브라이어,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도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을 보면 최근 대법관 인준에 일고 있는 정치 바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대법원 판결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2000년 '부시-고어' 대선의 플로리다 혈투 때 대법원이 플로리다주 재검표를 중단시키고 부시의 손을 들어주자 스티븐스 대법관은 "대선 승자를 확인할 수 없으나, 패배자는 명확히 드러났다"며 "그것은 국민의 신뢰가 훼손된 법관"이라고 자조했다. 기업의 정치광고를 무제한 허용한 대법원 판결을 오바마 대통령이 1월 상ㆍ하원 국정연설 때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또 이를 지켜보던 얼리토 대법관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리는 장면도 대법원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케이건 지명자 인준 과정도 정치 공방에서 예외가 아닐 듯싶다. 공화당은 하버드대 로스쿨 학장 당시 채용된 29명의 교수들 중 흑인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들어 케이건을 '진보를 내세운 인종주의자'로 낙인 찍을 태세다. 군의 동성애자 복무 제한에 반대해 모병관의 대학 출입을 금지한 것에 대해서도 "국가안보보다 특정 계층의 이익을 우선한 것"이라며 시비거리로 삼을 조짐이다.
시비·비판에 이어 음모론까지
"법관 경력이 없다" "정부의 권한을 확대 해석한다" "성향을 판단할 수 있는 공개된 기록이 없다"는 등의 비판은 점잖은 편이다. 일부에서는 건강보험, 기후변화, 대 테러정책 등에서 대대적 개혁을 추진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반 개혁세력에 의한 줄 소송 사태를 우려, 시카고대 로스쿨 교수 동료였던 케이건을 지명했다는 음모론까지 나온다.
대법관이 선거로 선출되는 대통령과 상원에 의해 지명되고, 인준을 받기 때문에 정치 영역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대법관이 종신직인 것은 정권 흐름에 좌우되지 않는 독립성을 지켜주기 위함이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 사사건건 충돌하는 정치권이 케이건 인준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하다.
황유석 워싱턴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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