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 발 세계 경제위기가 불안한 회복세로 막 돌아서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스 발 금융위기의 파도가 밀려들고 있다. 주가는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하였다. 제3 금융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지난 20여년간 선진경제, 신흥경제, 개발도상경제, 이행경제 등 지구촌 곳곳에서 수 차례 거듭되어온 금융위기와 그로 인한 파국적 경제위기를 보면서, 경제안전망 설치가 절실히 필요함을 느낀다.
사회안전망만으론 부족
그동안 사회안전망에 대한 논의는 많았다. 시장경쟁에서 탈락하거나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실업과 빈곤에 대응해 국가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이를 구제하는 것이 사회안전망이다. 실업자도 먹고 살 수 있고 극빈층도 최저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고도 강하게 설치해야 시장경제에서 어느 정도의 사회통합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통합에 기초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이러한 사회적 안전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은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사후적으로 보호하는 장치이다. 그것은 시장경제가 직면할 수 있는 위기나 위험에 대한 사전적인 안전장치는 결코 되지 못한다. 경제적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세계경제의 변화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이고 매우 민감하게 되었다. 특히 수출비중이 매우 높은 한국경제는 세계경제의 변화가 큰 폭의 변동을 초래하는 격변성(volatility)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격변성에 대응해 한국경제를 사전적으로 안정화시킬 수 있는 경제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경제안전망(economic safety net)은 금융안전망과 고용안전망이라는 두 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금융안전망은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국제 단기자본이동을 규제하는 토빈세의 도입, 금융위기 조기경보제도의 도입 등을 통해 금융시장을 규제하거나 감독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 그 문제점이 크게 노정된 금융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고용안전망은 노동자들이 실업이나 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실직하고 빈곤에 처했을 경우 거기서 탈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안전장치를 말한다. 실업자의 재취업을 위한 직업훈련을 실시하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강화하는 것,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를 실시하는 것, 민관협력으로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고용안정을 위한 노사협약과 사회협약을 체결하는 것 등등.
이러한 제도와 정책들은 고용안전망의 역할을 한다. 평생직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지식기반경제에서 평생고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실시하는 평생교육은 고용안전망의 주요한 장치 중 하나다. 지구온난화에 대응해 대량생산경제에서 녹색경제로의 이행이 요구되고 있는 대전환기에서 좋은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한 고용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 2008년 세계경제위기를 통해서 확인된 한 가지 사실은 사회안전망이 잘 갖추어진 복지국가에서는 실업보험제도나 조세제도가 경기 후퇴의 정도를 약화시키는 자동안전장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사회안전망이 경제안전망 기능을 했다는 점이다.
선진경제 실현에 꼭 필요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조세부담률이 낮기 때문에 자동 안전장치가 미약하다. 그 결과 세계 경제위기로 인한 경기후퇴가 그만큼 심각했으며 그에 따라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높은 지출 수준의 경기부양책을 실시해야만 했다.
금융안전망을 잘 구비하지 않은 채 금융 주도경제로 가고 있고 고용안전망을 잘 정비하지 않은 채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구하려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매우 위태롭게 보인다. 금융안전망과 고용안전망으로 구성된 경제안전망을 사회안전망과 함께 촘촘하고도 강건하게 구축해야 지속 가능한 선진경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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