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전 정부가 곳곳에 지뢰를 숨겨놓았다."
새로 출범한 영국의 보수-자유당 연립정부가 전 정권으로부터 '곳간' 열쇠를 넘겨받고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노동당 정부가 총선 전 마구잡이로 승인한 대형 국책사업을 포함,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남겨 새 내각이 출발부터 엄청난 부담을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16일 "대형 프로젝트들은 총선 발표 전과 유세기간 승인된 것들이 많다"며 "선심성 정책이자 다음 정부에 대한 사보타주(태업) 성격이 짙다"고 지적했다.
총선 패배를 예상한 노동당의 한 전임 장관은 "장관과 공무원 사이에 선거 전에 가능한 많은 계약을 처리하자는 모종의 공모가 있었다"고 밝혔고, 전 정부의 고문역을 역임한 이는 "'초토화 정책'이라고 부를 정도로 보수당을 위해 남겨놓는 게 없도록 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실토했다.
실제로 선거 전 공중급유기와 수송기 계약(130억 파운드ㆍ한화 18조5,000억원), 노동당 지지지역 학교건물 신축과 보수(4억2,000만파운드)이 각각 승인됐다. 이외에도 부처 내 대규모 전산시스템 구축 등 대형사업들이 즐비해 보수당의 재정지출 축소가 그 만큼 더 어렵게 됐다. 그렇다고 사업들을 중단시키는 것도 힘들다. 6억 파운드를 투자한 개인연금계좌사업의 경우 취소 비용만 2,500만 파운드나 든다.
당장 조지 오스본 내각 재무장관은 이번 주 기존 전산시스템 구축사업 등에 제동을 거는 등 재정적자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또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13일 첫 각료회의에서 각료임금을 5% 삭감하고 5년간 동결하자는 제안을 내놓는 등 솔선수범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달 발표할 비상예산안에 현재 17.5%인 부가가치세율을 20%로 올리는 증세안을 비롯, 세수확대책 마련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는 감세를 표방하는 보수당의 정책에도 어울리지 않는데다, 연립정부의 한 축인 자유민주당도 반대하고 있지만, 재정감축안을 내놓지 않으면 국가 신용등급하락마저 우려돼 선택지가 많지 않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올해 영국의 재정적자 전망치가 국내총생산(GDP)의 12% 수준으로 EU내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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