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4년 추석을 앞둔 9월 어느 날. 원영식(49) 아시아기업구조조정 회장 집으로 10개들이 건강드링크 한 박스가 배달됐다. 보낸 이는 최모(80) 할머니. 원 회장이 수소문 끝에 할머니의 임대아파트를 찾아갔더니 최 할머니는 대뜸 팔을 만져보라면서 내밀더라고 했다. "도와 주신 덕분에 하루 한 끼 먹다가 두 끼를 먹으니 이렇게 살이 쪘지 뭐예요. 정말 고마워요."
#2.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남동생과 함께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최모(22)씨. 2005년 1월 고1이던 최씨는 원 회장의 장학금으로 공부, 3년 후 모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했다. "꿈이 바뀌었어요. 0교대에 진학해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저도 원 회장님처럼 이웃을 도우며 살려고요."
원 회장은 '나눔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기부천사로 통한다. 그는 2004년 살던 서울 중구의 독거노인 등 저소득층 7세대에 첫 기부를 시작한 이래 그 숫자를 159세대로 늘리는 등, 현재까지 4억여 원을 후원했다. 최 할머니와 최씨에게는 지금도 매달 각 15만원, 30만원을 보내고 있다.
11일 서울 청담동 사무실에서 만난 원 회장은 올해 1월 한 국제중에 입학한 김모(14)군이 쓴 편지를 자랑하듯 꺼내 보였다.
"저를 도와주시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더욱 열심히 공부해 장래희망인 '경찰청장'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나중에 어려운 국민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이것이 저를 도와주신 분들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군은 2007년부터 원 회장의 사랑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이다. 원 회장은 "편지를 보니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어도 당차고, 자신감이 넘치더군요. 김군은 영어 공부하려고, 학교 선배에게 부탁해 과외를 받을 정도였죠. 이렇게 똑똑한 아이가 가난해서 공부를 못한다면 얼마나 세상이 원망스럽겠어요."그는 "남을 돕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원 회장이 '나눔의 삶'을 실천하게 된 것은 부모의 영향이 큰 듯하다. "제 어릴 때 부모님은 30년 넘게 서울 명동서 살고 계셨어요. 두 분은 4남매(1남3녀) 먹이기에도 빠듯한 살림에도 지게꾼 걸인 등을 만나면 팥죽을 쑤어 주고, 따뜻한 차를 대접하셨죠. 그러다 보니 길에서 만나는 구두 닦는 아저씨도 저와 누나들에게 인사를 할 정도였어요." 그의 큰 누나는 지금껏 20년 넘게 음성꽃동네에서 요리와 이ㆍ미용 봉사를 하고 있고, 둘째 셋째 누나도 능력껏 이웃을 돕고 있다고 했다.
"이웃을 돕는 일이 생각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처음엔 방법을 몰랐어요."2004년 봄, 그는 아내 강수진(39)씨와 함께 거주지인 신당4동의 동사무소를 찾아가 이수정 사회복지사에게서 후원 대상자 7명을 소개받아 정기 후원을 시작했다. 아내는 저소득층 도시락 배달 봉사에 나섰다. "임대아파트 주민의 삶이 너무 눈물겨운 거예요. 전기세 아끼려고 불도 안 켜고 살고, 쌀이 없어 경로당에서 주는 점심 한끼로 하루를 버티는 어른들도 계셨어요. 혼자 사시는 한 할머니는 도시락을 들고 오는 유일한 말벗 강씨를 기다리며 골목에 나와 서계시기도 했어요. 사람이, 정이 그리우셨던 거죠."
원 회장은 중구청이 차상위계층을 지원하는 '행복더하기운동'에 참여하는 등 후원 대상을 확대해나갔다. 현재 그의 후원대상자는 이수정 복지사가 따로 관리하고 있다.
어머니가 2007년 별세한 뒤 들어온 조의금 5,000만원을 그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한국복지재단에 기부했고, 그 해 가을부터 매년 어머니를 생각하며 관내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경로잔치를 벌이고 있다. 2008년에는 치매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자원봉사자 50여명에게 제주도 여행을 보내드리기도 했다.
사는 보람이 가장 컸던 때가 언제였냐고 묻자 그는 잠시 머뭇거린 뒤 네팔 소녀 밍마참지(19)양의 사연을 꺼냈다. 그는 지난해 4월 엄홍길 휴먼재단과 휴먼스쿨 신축사업 차 에베레스트 중턱의 팡보체 마을에 갔고, 거기서 좌우 45도로 기우뚱 거리며 다리를 심하게 저는 이 소녀를 만났다고 했다. 등굣길에 언덕에서 굴러 다리가 부러졌는데 병원도 없는 마을에서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뼈가 기형으로 굳어진 거였다. 원 회장과 재단은 지난해 11월 그를 서울로 데려와 강남성모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했다. "수술 후 똑바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 가슴에서 뜨거운 불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때의 쾌감을 저는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원 회장이 불편해하는 것도 있다. 기부금액이 늘면서 고액 개인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를 주관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권유로 이 모임에 가입했는데, '돈 많이 버니까 기부한다' '생색낸다'는 등 뒷말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제가 기부하는 것을 감추지 않고 알리는 것은 저처럼 기부 또는 봉聆求?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말했다.
그의 꿈은 복지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부자가 있데요. 돈은 많은데 버스ㆍ지하철 타고 다니며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가난한 부자, 승마ㆍ골프를 즐기면서 번 돈을 자신에게 투자하는 품위 있는 부자, 그리고 나눠주는 부잡니다. 꼭 꿈을 이루고싶어요."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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