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 귀가 '불량아빠'의 변신… "아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죠"
워킹 맘 최대의 적은 내부에 있다고도 한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도 정작 육아 문제에 관해선 남편이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 역할에 성심성의를 다하는 경우도 있다. 염종원(35) 서울 서초구 주임의 일상을 통해 좋은 아버지와 멋진 남편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죄송합니다." 11일 오후 6시30분께 염씨는 낮은 목소리로 컴퓨터를 끄고 슬그머니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 때문에 일찍 퇴근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집. 일부 상사는 칼 퇴근하는 염씨를 좀팽이라고 부르며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여직원들 사이에서 그는 멋쟁이로 통한다. "상사들한테 눈치 안 보인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이해해 주니까 그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죠."
7시30분께 현관 문을 열자 두 꼬맹이가 요란하게 '아빠'를 외치며 품 안에 달려든다. "요즘엔 애들이 아빠가 엄마보다 집에 먼저 오는 줄 알고 있더라고요." 두 딸 다연(5)이와 다혜(3)를 번쩍 안아 올린 후 볼을 비비고 있는 염씨 얼굴엔 엷은 미소가 가득하다. 하지만 흐뭇한 마음도 잠시. 염씨는 아이 부인이 퇴근할 때까지 3시간 동안 딸들을 돌봐야 한다. 퇴근 전까진 최근 지방에서 상경한 염씨의 장모가 아이들을 돌봐 주고 있지만 퇴근 후에는 염씨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아버지를 보자 장난기가 발동한 두 딸은 집안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주섬주섬 집안을 치우던 염씨는 바로 아이들과 인형 놀이를 한다. 최근 다연이가 재미를 부친 블록 놀이도 빠뜨리면 안 된다. 아이들을 껴안고 온 집을 굴러다니다 보면 금새 땀으로 옷이 젖는다.
1시간 남짓 아이들과 놀아 줬을까. 이제 아이들을 씻길 시간이다. 훌쩍 커버린 다연이를 세면대에 세우고 스스로 양치하는 법부터 비누칠해서 세수하고 발 씻는 방법까지 가르친다. 어린 다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 손끝이 닿아야 한다. 염씨는 그렇게 30분 정도 아이들과 물장난을 하며 목욕을 한다. 간혹 씻기 싫다고 징징대거나 눈에 비누가 들어갔다고 울 때면 목욕 시간은 더 길어진다.
아이들을 다 씻기면 속옷을 새 것으로 갈아입힌다. 잠자기 전에 다혜 기저귀를 채워 주는 것도 빼먹으면 안 된다. 다혜는 기저귀가 거추장스러운지 자주 도망가기 일쑤라 그 쉬운 일이 한참이 걸릴 때가 있다. 아내가 가끔 조금 일찍 9시께 들어오면 아이들 책 읽어 주는 것은 그 사람 몫이 되겠지만 대개는 염씨가 책임진다. 두 딸이 좋아하는 책을 6, 7권 미리 골라 놓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소리 내 읽어 준다. 단순한 그림책이지만 장면을 꼼꼼히 설명해 주고 아이들과 문답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새 10시가 훌쩍 넘어간다. "어쩔 때는 퇴근은 했지만 또 다른 직장에 다시 출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두 딸을 재우려면 염씨의 팔이 필요하다. 팔베개를 해 주고 같이 누우면 아이들은 장난을 치며 뒤척이다가도 30분 후쯤 잠이 든다. 아이들을 재운 후 염씨는 TV에서 스포츠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잠시 여유를 부려 보지만 피곤한 나머지 아이들과 함께 잠들 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염씨는 3개월 전부터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공공 기관에 근무하는 부인이 바쁜 부서로 발령이 나면서 퇴근 시간이 9~10시로 늦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 돌보는 일은 일찍 퇴근하는 염씨 몫이 됐다. "석 달 동안 애들과 옥신각신하다 보니 육아가 얼마나 힘든 줄 알게 됐어요. 밤 늦게 퇴근해 파김치가 돼 있는 아내에게 집안일까지 모두 맡기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죠."
그렇다고 염씨가 예전부터 육아에 적극적인 아버지는 아니었다. 부인이 발령이 나기 전에는 그도 불량 아버지로 분류됐다. 술자리가 잦아 자정 넘게 퇴근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아이들은 주말에만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부인의 근무 조건이 달라지자 염씨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염씨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나중에 내가 직장일로 바빠지면 아내가 좀 양보하지 않을까요. 우리 집엔 워킹 맘뿐 아니라 홈 파파도 있답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 "좋은 아빠 되는 노하우 알려드려요"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은 멀지 않다. 거창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조금 일찍 퇴근하고 자녀들과 조금 더 스킨십을 늘리면 된다. 결심은 했지만 막상 자녀를 살갑게 대하는 것이 어색하다면 가까운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시행하는 아버지교실이나 출산 교육, 요리 교실 등을 이용하면 손쉽게 노하우를 얻을 수 있다.
서울 금천구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올해 3월부터 관내 유아기 자녀를 둔 아버지를 대상으로 남성 가족생활 교육인 '멋진 아빠, 통하는 남편' 프로그램을 무료로 실시하고 있다. 가정 내에서 아버지의 역할과 리더십, 효율적인 양육 방법 등을 알려 준다. (02)803_7747
서초구 건강가정지원센터는 '맞벌이 가족 관계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직접 직장으로 찾아가 아버지 역할에 대한 전문가 강의와 부자 간 역할 연습 등을 해 준다. (02)576_2852
출산교실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아버지가 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서대문구는 매주 토요일 '아빠와 함께 하는 토요 출산교실'을 운영한다. 예비 어머니와 아버지 등을 대상으로 태교와 신생아 관리 등 출산 전후 자녀 보육에 관한 노하우을 알려 준다. (02)330_8942.
좋은 아버지 길라잡이 책을 활용하는 것도 괜찮다. 시간이 없다면 인터넷으로도 좋은 아빠 교육을 편리하게 받을 수 있다.
강철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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