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원중 지음ㆍ임홍빈 옮김/에버리치홀딩스 발행ㆍ668쪽ㆍ3만5,000원
중국 소설 '서유기'는 누구나 아는 고전이다. 당나라 스님과 제자 셋이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겪는 81가지 모험을 풍자와 유머, 익살로 엮은 재미난 이야기다. 실존 인물인 당나라 구법승 현장법사의 서역 기행을 소재로 1592년 경 명나라의 오승은이 대하소설로 완성했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는 귀 얇고 겁 많고 어리버리해 일행을 곤경에 빠뜨리는 못난이다. 여인에게 홀리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더니 미녀의 유혹 앞에 쩔쩔매는 위선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현장법사는 딴판이다. 진리를 구하러 19년 간 목숨을 걸고 10만리 먼 길을 다닌 위대한 학승이자 갖고 온 불경을 번역해 불교 역사에 금자탑을 쌓은 거인이다.
는 동양학의 대가인 중국 학자 첸웬중이 '서유기'의 삼장법사로만 알려져 있는 현장 스님의 실체를 추적한 역저다. 소설 내용 중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밝히기 위해 현장법사의 저서 '대당서역기'와 그의 제자들이 쓴 '대자은사 삼장법사전'을 중심으로 여러 역사 문헌을 뒤져 철저한 고증으로 진실을 복원했다. 1,400년 전의 위대한 여행가, 번역가, 불교학자로서 현장법사의 초상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중국 CCTV의 학술프로그램 '백가강단'에서 36회에 걸쳐 강의한 내용을 묶은 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668쪽의 두툼한 분량이 지루할 새 없이 넘어간다. 현장법사의 출생부터 입적까지 시간 순으로 풀어가는 이야기가 마치 흥미진진한 TV 연속극을 보는 듯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끝나버려 다음 회를 기다리게 만드는 연속극처럼, 독자로 하여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든다. 쉽게 쓴 데다 말솜씨도 부드럽고 구수해 읽는 맛이 각별하다.
현장법사는 19세에 벌써 고승으로 명성을 얻을 만큼 뛰어났다. 불경을 구하러 떠난 것은 28세 되던 해, 당나라 건국 초기인 627년이다. 아직 나라가 안정되지 않아 국경을 벗어나는 것이 금지된 때였다. 걸리면 사형, 도와준 사람도 예외없이 사형을 당하던 때라 목숨을 걸어야 했다. 혈혈단신, 배낭만 메고 떠난 그의 용기는 비할 데 없이 대담한 것이었다.
간신히 위기를 넘기고 길을 나섰으나 눈 덮인 높은 산과 뜨거운 사막이 다시 목숨을 위협했다. 고비사막을 건너는 것은 특히 고통스러워서 환청과 환영에 시달렸다. 그 경험은 '서유기'에서 많은 요괴와 마귀 이야기로 변용돼 나타난다.
중국을 출발해 인도로 갔다가 돌아오기까지 그의 구법 여행은 19년이 걸렸다. 인도에서 8년 간 머물며 당대 최고 학승들과 학문 대결을 펼쳤고, 돌아와서는 죽을 때까지 19년 간 산스크리트어 원전을 한문으로 옮기는 데 매진했다. 그의 번역은 정밀함에서 지금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분량도 엄청나서 혼자 번역했거나, 자신이 주관해서 번역한 경전이 1,300권이 넘는다. 그의 번역 작업은 불교학 연구의 토대가 되었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현장법사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장법사가 '대당서역기'에 남긴 진기한 기록들을 실제 역사적 사실에 비춰 점검하는 대목들 또한 흥미롭다. '대당서역기'에 나오는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작은 나라들은 무려 139개나 된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나라들이다. 현장법사는 이 많은 나라들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각 지역의 전설, 일화, 풍물 이야기와 함께 자세히 기록했다. 덕분에 '대당서역기'는 역사의 큰 그림에서 빠진 퍼즐을 채워 넣는 자료의 보고가 되고 있다.
이처럼 위대한 인물이 '서유기'에서 찌질이로 그려진 것은, 오승은이 '서유기'를 쓴 명나라 말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백성은 폭정에 시달리고 도교의 횡포는 극심한 가운데 불교는 무기력하기만 해서 스님들도 조롱감이 되었던 것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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