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현지시간) 자정께 14일간의 파키스탄 취재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좌석에 몸을 맡겼다. '이제 살았다'는 안도와 함께 며칠 간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근처에서 자동차 폭탄이 터지던 굉음, 건장한 파키스탄 남자들이 뒤따를 때 느꼈던 납치의 위협, 숙소에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불면(不眠)의 밤들.
무엇보다 주변 파키스탄인 누구도 기자의 말을 믿지 않았던 취재 초반 며칠이 가장 힘들었다. 탈레반 활동 혐의로 조사를 받은 파키스탄인 안와르 울하크(31)가 거짓여권으로 7년간이나 한국에서 이슬람 성직자(이맘) 행세를 했고, 스스로 탈레반의 지령을 받고 왔다고 진술했다는 얘기에 모두 고래를 가로저었다. 취재를 도운 현지인 코디네이터조차 "그를 돕고 싶다"고 했다. 사방이 적들로 포위돼 퇴로가 차단된 것처럼 막막했다. 다행히 그들의 태도는 취재과정에서 안와르의 거짓말이 하나 둘 확인되면서 점차 변했다.
지난 2월 말 안와르가 경찰에 붙잡혔을 때 일부 언론은 "소수 이주민의 인권을 짓밟았다"며 경찰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적어도 그가 7년간이나 다른 사람의 명의를 훔쳐 쓴 혐의는 입증됐는데도 그의 거짓말과 가족의 눈물 앞에 사실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파키스탄 취재를 바탕으로 무슬림 극단주의에 의한 테러가능성을 다룬 연재기획을 지난 10일부터 5회에 걸쳐 내보내는 동안에도 반응들은 엇갈렸다. 한쪽에선 '이주민을 몰아내야 한다'며 극단적인 주문을 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또 공안정국을 조성한다'고 비난했다. 한달 가까운 고민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잠시 회의마저 들었다.
정답을 찾기는 어렵지만 어느 쪽이든 극단적인 견해는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외국인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는 현실에서 배제와 억압은 갈등을 키울 뿐이다. 포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범죄와 테러의 위협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결국 이 두 가지 요구를 조화시키는 것이 평화공존의 길이 될 것이다.
문준모 기자(사회부)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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