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망친 선생'이란 책이 나올 뻔했다. 촌지 문제로 스승의 날 폐지가 거론되던 때였다. 진지한 기획회의가 있었다. 조사해보니 스승의 날에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싶은 스승이 아닌, 찾아가 항의하고 싶은 선생이 의외로 많았다. A는 초등학교 때 담임으로부터 친구의 저금통을 훔친 도둑으로 몰렸다.
그 후 A는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으로 학교를 1년 반이나 쉬어야 했다. 요즘도 악몽을 꾼다고 했다. B는 중학교 때 담임이 행상을 하는 자신의 가난한 어머니에게 갈취하듯 돈을 빌려가는 것을 보았다. B는 그 순간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자신을 꿈을 빡빡 지워버렸고, 어머니는 30년이 넘도록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다.
더 끔찍한 사례도 많았다. 당장 선생을 찾아가 사과를 받고 싶다는 제자까지 있었다. 책이 출판되었다면 시끄러웠을 것이다. 그 책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그래도 '무명교사'가 많다는 이유였다. 바르게 가르치는 일에 묵묵히 헌신하며 자신을 태우는 촛불 같은 스승이 더 많다는 것이었다.
지탄받는 몇몇 교사 때문에 그분들의 이름까지 욕되게 할 수 없었다. 작가이며 성직자였던 미국의 헨리 반다이크도 '무명교사의 찬사'에서 '그가 켜는 수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 그에게 되돌아와 그를 기쁘게 하노니'라고 노래했다. 아직은 존경해야 할 스승이 계셔, 고마운 스승의 날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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