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온라인게임 가 폭발적 인기를 끌 무렵, 서울 PC방에서 한 청년이 느닷없이 들이닥친 지방 폭력조직원들에게 죽도록 맞은 일이 있었다. 이유는 어처구니없었다. P군의 게임상대가 하필이면 그들이었던 것이다. 자기네 캐릭터들의 허망한 죽음에 잔뜩 약이 오른 폭력배들이 상경, P군을 찾아내 현실에서 분풀이를 한 것이다. 다들 한편의 소극 정도로 여겼지만 이 일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이 접합한 최초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후 러시아에선 같은 이유로 폭력조직 간에 전쟁까지 벌어졌다.
■ 올해 초 3D영화 를 아이맥스화면으로 보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도 자리에서 쉬 일어서지 못했다. 영화 속 캐릭터들과 똑같이 무려 3시간 가까이 판도라의 밀림과 창공을 함께 뛰고 날아다닌 뒤끝의 심한 탈진감 때문이었다. 그건 객체로서 영화를 감상한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실제 체험이었다. 그러므로 탈진감은 분명 현실이었다. 주인공 제이크가 마지막에 스스로 인간임을 버리고 나비족이 된 것처럼. 물론 의식 속에서지만, 의식이 곧 현실인식일진대 실제와 다를 것은 전혀 없다.
■ 이미 TV를 통해서도 상용화하기 시작한 3D 기술의 원리는 이제 익히 아는 바다. 6.5cm 정도인 두 눈 사이의 시각(視角)이 만들어내는 깊이감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두 눈의 간극만큼 거리를 띄운 2대의 카메라로 피사체를 찍고, 특수안경을 통해 실제처럼 두 눈이 각각 다른 시각정보를 받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분리된 시각정보는 뇌에서 하나로 결합된다. 무안경 3D TV는 아예 TV화면에 이 안경 역할을 하는 필름을 부착한 것이다.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엊그제 내한, 3D 기술을 통한 미디어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선언했다.
■ 폭력으로 현실과 가상세계의 접합 가능성을 본 이래 불과 10년 만에 현실과 가상이 전도되는 적 세계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물라시옹 개념을 빌리자면 원본도 없는 순수한 가상이 실재가 되는 세계다. 그래서 일찍이 플라톤은 현실이 오히려 가상의 이미지라고 했던가. 3D 미디어는 이렇게 우리의 삶과 인식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다. 그러므로 3D 기술에 마냥 경탄만 하고 있을 게 아니다.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완전히 달라질 세계에서의 정신적, 문화적, 윤리적 혼돈을 막기 위한 총체적인 준비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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