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2일 '대한민국사진대전' 작품 심사가 진행된 한국사진작가협회 심사장. 이상하게도 심사위원 7명의 시선은 줄곧 심사대에 오르는 출품사진이 아니라 심사위원 앞쪽 의자에 앉은 한 여성에게 꽂혔다. 심사점수를 기록하는 협회 여직원이다. 그리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심사위원 뒤편 전자식 점수판에는 만점(10점)에 가까운 점수가 쏟아져 나왔다. 심사위원들의 눈은 심사 내내 그녀의 움직임만을 좇았다.
전날 밤 오후 7시 심사위원 14명 중 박모(64)씨 등 6~9명이 비밀리에 서울 강북구 한 모텔에 모였다. 한국사진작가협회 사무처장인 김모(55)씨와 총무부장인 유모(48)씨가 가져온 30여 매의 출품사진들이 그들 앞에 쫙 펼쳐졌다.
사무처장인 김씨가 대상과 우수상 등 '준비된 입상작품'을 미리 골라온 것이었다. 김씨는 심사위원들에게 20~30분간 사진을 외우게 했고 상을 줘야 할 작품을 물어보면서 재확인했다. 그래도 불안했던 김씨는 심사위원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심사 당일 점수를 후하게 줘야 할 작품이 전시되면 직원인 김모(34)씨를 일어서도록 했다.
이날 대상은 진모(63ㆍ여)씨가 제출한 '협동'이라는 작품. 사무처장인 김씨가 진씨로부터 현금 3,000만원을 받은 결과였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007~2009년 대한민국사진대전과 2005~2009년 '서울시사진대전'에서 협회 회원들로부터 수억원의 돈을 받고 상을 내준 혐의로 사무처장 김씨를 구속하고, 심사위원과 돈을 건넨 회원 등 4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사무처장 김씨는 대상은 3,000만원, 우수상 1,500만원, 특선 700만~1,000만원, 입선 100만원 정도를 받는 등 협회 회원 42명으로부터 지난 5년간 4억여원을 받았다. '준비된 입상작'중에는 심지어 합성사진과 포토샵으로 조작한 사진도 있었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는 출품자들이 수상 경력을 쌓아 각종 사진대전 심사위원이나 초대작가로 활동하려 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돈을 요구했으며 이들은 대부분 자영업자나 주유소 사장, 전직 대학교수 등 일반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계자는 "보통 사진대전은 평균 1,200명 정도가 작품을 내지만 정작 상을 받는 건 김씨에게 돈을 준 20~30명"이라며 "심사위원들은 김씨로부터 심사위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부정심사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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