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사망한 남편에 대한 보상금을 받은 아내가 남편 생전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상금을 환수당해 법원에 구제를 요청했지만 패소했다.
서울고법 행정3부(부장 이대경)는 시위 중 총격을 받아 숨진 전모씨의 부인 김모(59)씨와 아들(31)이 "보상금을 환수한 것은 부당하다"며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13일 밝혔다. 또 이들이 제기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도 기각했다.
1974년 김씨와 결혼한 전씨는 뒤늦게 태어난 아들의 돌도 보지 못한 채 80년 8월 귀가 중 고성방가를 했다는 이유로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 이듬해 6월 육군 제5사단 감호분소에서 전씨는 부대원들의 감호생 구타를 참다못해 시위를 하다가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남편 생전 혼인신고를 못했던 김씨는 결국 남편 사망 9일 뒤에야 혼인신고를 했다. 사망신고는 그 뒤에 이뤄졌다.
12년의 세월이 흐른 2003년 위원회가 전씨를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하자, 국가는 김씨에게 보상금 1억4,000여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2008년 4월 위원회는 돌연 보상금을 환수했다. 남편의 호적등본상 사망일자가 실제와 다르게 기재된 것과 혼인신고가 사망 뒤에 이뤄진 사실을 발견해 자격을 박탈한 것이다. 민주화운동관련법상 보상금 지급 대상자는 법률혼만 인정하는 민법상 재산상속인 규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소송을 제기한 김씨는 1심에서 패소하자, 항소심에선 "다른 법과 달리 민주화운동관련법만 유족 범위를 법률혼 관계로 한정한 것은 차별이고,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실제 근로기준법, 공무원연금법, 군인연금법 등은 사실혼도 인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언니가 죽은 뒤 형부와 사실혼 관계에 있던 처제에게도 공무원 유족 연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서울고법도 중혼적 사실혼 관계에 있던 여성에게 군인연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는 등 사실혼 인정 범위도 확대하는 추세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들의 딱한 사정을 인정하면서도 "보상금 지급대상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입법자의 재량"이라고 밝혔다. 국회가 입법적으로 해결해야지 법원이 임의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근로기준법, 공무원연금법 등은 사회적 기능, 국민적 기대와 합의 등이 다르고, 법률혼이 가지는 명확성 때문에 사실혼과 다르게 취급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며 부당한 차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 고위관계자는 "법이 모든 것을 포섭할 수는 없지만, 억울함이 명백한 이상 국회에서 관련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다른 법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어 다퉈볼 여지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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