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의 상처만큼은 물려 주지 않기를 그토록 바랐는데…."
5ㆍ18민주화운동의 고통스런 기억 속에 갇혀 있는 남편 얘기를 하다가 나지막하게 토해 내는 부인의 독백엔 원망이 묻어났다. 부인은 군홧발에 짓밟히고 모진 고문을 당해 툭하면 정신 줄을 놓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이 치유되리라는 기대를 버렸다. 그저 부모의 상흔이 아이들 가슴 속에 멍울로 남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그 소박한 소망도 그에겐 사치였다.
5ㆍ18 부상자 김현수(가명ㆍ54)씨의 부인 추혜성(54)씨. 13일 오후 광주 서구 5ㆍ18기념문화회관에서 만난 그는 아들 선우(가명ㆍ21)씨 이름이 나오자 눈물을 글썽였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추씨는 "선우에게 5ㆍ18 트라우마(충격후 스트레스장애)가 있어요"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남편의 고통이 선우에게 옮아 가고 있어 가슴이 미어집니다. 남편의 아픔이야 전생의 업보려니 하면 되지만 자식들까지 이게 무슨 죄랍니까."
추씨가 선우씨의 트라우마를 감지한 것은 2008년 가을. 병무청 신체검사 통지를 받은 선우씨가 "군대에 절대 안 가요"라며 극심한 거부반응을 보인 것이다. 추씨는 한 번쯤 해 보는 치기 어린 행동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신검 이후 선우씨의 행동은 점점 거칠어지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군대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선우가 군인들만 보면 눈빛이 무서워지고 악을 쓰며 신경질적으로 돌변해요. 심지어 친한 친구들이 군대에 가면 그 뒤로 얼굴도 보지 않고 연락을 끊어 버리더라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추씨는 이듬해 2월 선우씨에게 대학에 휴학계를 내게 하고 병원에 데려가 심리검사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 측은 "어렸을 때부터 잠재돼 있던 군대에 대한 분노감이 폭발 직전이다. 이 상태로 군대에 가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며 정신과 치료를 권했다. 병원은 "선우씨가 병명을 알면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며 입 조심도 당부했다.
5ㆍ18 당시 시민군이었던 아버지가 상무대에 끌려가 폭행과 고문을 당한 후 술과 폭력 속에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자라 온 게 원인이었다. 5ㆍ18 피해자(아버지) 1세대에게 가해진 국가 폭력이 2세대까지 고통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추씨의 가슴은 무너졌다.
"선우가 다섯 살 때부터 TV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군인들이 나오면 '저 사람들이 우리 아빠를 때렸지'라며 채널을 돌려 버리더라고요. 그때는 그냥 하는 말이려니 했는데 세상에…."
추씨는 부모를 잘못 만난 아들에게 치료라도 제대로 받게 해 주고 싶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정신과 치료를 권할 때마다 선우씨가 "내가 미친 것으로 보이냐. 나도 아빠처럼 정신병원이나 들락거리면 좋겠냐"며 더욱 폭력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추씨는 선우씨가 겪고 있는 트라우마가 자칫 국가권력 전체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두려워 했다. 그는 "국가권력이 5ㆍ18 때처럼 폭력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달래 보지만 상처받은 아들의 모습에선 왠지 모르게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감이 읽혀져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끝을 흐렸다.
"선우는 자신이 5ㆍ18 유공자의 자녀라는 게 싫대요.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위해 싸운 아버지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 도대체 이 놈의 아픔이 어디까지 가서 끝이 날지 모르겠어요." 그의 짧은 넋두리 속에는 5ㆍ18 30년의 아픈 역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광주=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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