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출판의 역사에서 2010년은 진정한 의미의 전자책 시대 원년이라고 할 수 있다. 올들어 스마트폰과 각종 단말기가 보급됨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전자책을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국내에 등장한 전자책은 PC로 내려받고 보는 형태여서 들고 다닐 수 없었다.
전자책 시장에서 한 발 물러선 채 지켜보던 국내 출판계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60여개 출판사가 공동출자한 전자책 관리업체 한국출판콘텐츠(KPC)는 12일 신간과 스테디셀러를 중심으로 3,000종의 전자책을 풀었다. 200여개 출판사와 제휴해 연말까지 1만5,000종의 전자책을 선보일 계획이다. 전체의 3분의 2가 18개월 이내 출간된 신간이다.
현재 국내 시장의 전자책은 나온 지 5년 이상 지났거나 저작권이 소멸된 책이 대부분이다. 분야도 로맨스, 무협 등에 치우쳐 다양하지 않다. 신간이나 인기도서는 찾아보기 힘들어 읽을 만한 책이 별로 없다는 불만이 높았다. KPC는 이런 상황의 전자책 시장에서 콘텐츠 공급자로서 출판사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지난해 8월 설립됐다. 전자책의 제작ㆍ관리ㆍ유통을 지원하고 대행하는 회사다.
우선 KPC는 각 출판사가 전자책의 정가를 매겨 내보내는 출고 정가제를 채택했다. 대형 온라인서점이 종이책 시장을 장악함으로써 책의 공급가까지 결정하고 출판사는 끌려다니는 상황을 전자책 시장에서 반복하지 않고, 출판사가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더난출판 대표인 신경렬 KPC 대표는 "KPC의 설립 목표 중 하나는 출판의 유통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국내 출판계가 전자책 사업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전자책 때문에 종이책 판매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부터 불법복제 등 저작권 문제, 거래 상대인 유통업체에 대한 신뢰 부족 등이 원인이었다.
KPC는 이러한 불안 요소를 줄임으로써 출판사들이 안심하고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를 위해 KPC가 공급하는 전자책은 출판계 공용 DRM(디지털 콘텐츠 관리 프로그램)과,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어도비 DRM을 나란히 채택했다. 출판계 공용 DRM은 각 출판사가 전자책 판매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정산할 수 있게 돼 있어 거래의 투명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어도비 DRM을 함께 쓰는 것은 해외 판매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러한 출판계의 움직임에 대해 전자책 사업을 하고 있는 유통업체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그동안 솔직히 전자책의 종 수는 많아도 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상품이 적어서 고민이었다"며 "출판사들이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해 준다면 전자책의 품질과 다양성이 더 높아져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자출판협회가 추산한 2009년 국내 전자출판 시장 규모는 전자책, 모바일북, 전자사전, 학술논문, 오디오북, 기타 디지털 출판을 합쳐 5,786억원. 이 가운데 전자책 매출은 2010년 1,975억원에서 2013년 5,838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책을 포함한 전자출판 전체 시장은 2010년 6,908억원에서 2013년 1조 2,568억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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