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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5) 생선구이 전문 전주식당 주인 김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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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5) 생선구이 전문 전주식당 주인 김영창

입력
2010.05.1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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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불 맛' 한 점에 왜 엄마 생각이 나지?

한 나라를 돌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나는 시장에 나갈 때마다 이런 물음을 하게 된다. 동이 채 트지도 않은 이른 아침, 시장의 온도는 우리 모두의 일상보다 3도쯤은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늦은 봄이라도 아직 쌀쌀한 아침, 동대문 시장은 벌써 비즈니스가 한창이다. 토박이 상인들, 상인들을 오래 믿고 찾는 소비자들, 그 둘을 연결하는 배달 아저씨들이 바쁘게 각자의 아침을 불태운다.

동대문 종합시장의 30년 밥상

'종합시장 골목의 생선구이집'이라고 하면 근처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일단 한 골목에 생선구이 집들이 모여 있어서 생선 굽는 냄새를 피해 갈 수가 없고, 그 중에서도 오래 된 '전주식당'같은 곳은 동대문 시장 내에서 '집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존재감이 크기 때문에 시장의 누구를 잡고 물어도 다 안다.

식당 상호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 김영창 사장은 전주 사람이다. 1947년생으로 서울에 올라와 다른 일도 해 봤지만 그래도 사람이 먹고 사는 일 중 '밥'을 빼 놓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식당업을 시작했다고. 안주인의 손맛에 대한 자신감이 한 몫을 했다며 은근히 자랑을 하신다. 그렇게 시작한 식당이 동대문에 정착한 것은 30여 년 전, 그 때부터 오늘날까지 김영창 사장의 기상시간은 변함이 없다. 새벽 3시 반 기상, 밤 11시 취침.

"시장 사람들 밥 먹는 시간에 맞춰 생선 준비하려면 반드시 세시 반에 일어나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다. 30여 년 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는 자만이 낼 수 있는 자신감으로 꽉 찬 목소리다. 전주식당을 찾는 80% 이상의 손님이 단골인 만큼, 내 식구 밥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 새벽부터 생선을 잡는다.

"소금으로 간을 잡고 냉장고에서 하루 이상 숙성을 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소금으로 범벅을 하지 않아도 간이 충분히 배면서 맛있는 구이용 생선이 되지요."

그렇다면 소금은 얼마나 뿌리는 것일까, 아니 얼마나 해 봐야 소금의 양을 가늠하게 되는 것일까.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수도 없이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조금만 소금을 더 집으면 짜고, 그것이 아니면 싱겁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선한 생선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생선에 자신이 있으니까 소금 외 일체의 조미료 간이 필요치 않는 것이지요."

대를 잇는 고객들

이렇게 30년 간 구워 온 김영창 사장의 생선 맛은 사실 나부터 보증하는 바다. 직업상 꼭 필요한 앞치마, 테이블 보, 컵받침, 무릎 냅킨 등을 일일이 기성품으로 사기 아까워 동대문종합시장을 방앗간처럼 드나들던 시절, 스물 몇 살 처녀가 본 그 새벽의 시장은 늘 가슴 뛰는 곳이었다. 형형색색 눈을 즐겁게 하는 원단은 코앞에 다가온 계절을 먼저 알려주었고, 거기에 어울리는 단추며 레이스가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모두가 일하는 이른 아침의 시장은 건강함이 넘쳤다.

그렇게 시장을 돌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나는 어김없이 생선 골목의 맨 첫 집, '전주식당'을 찾았다. 저마다 고픈 배를 갖고 식당에 들어선 사람들이 겉은 잘 익고 속은 촉촉하게 구워진 생선 한 마리에 열중하고 나면 어쩐지 힘이 생겨 또 갈 길을 나서는 것 같았다. 취재차 방문한 오늘도 일본 관광객 세 명이 잘 먹고 간다며 주인장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나간다.

"장사 처음 시작할 때부터 밥 먹던 사람들이 자식 낳고, 또 그 자식들이 커서 장사를 도우면서 같이 밥을 먹으러 와요."

하루 500~600마리의 생선이 나갈 만큼 손님이 많으니 주인장의 입장에서는 일일이 그 얼굴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나 같은 단골들에게는 항상 마운드에 선 노장 투수처럼 꼿꼿이 서서 연탄불에 생선을 굽고 있는 김영창 사장의 모습이 '전주식당'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 집의 생선 맛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주인장만의 노하우가 더 숨어있을 것만 같다.

가령 소금 간과 숙성시키는 냉장고의 온도를 거치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무얼까?

생선구이엔 역시 불이 중요

"불이 중요하지요. 아궁이와 석쇠가 중요합니다." 김영창 사장의 답이다.

삼치, 굴비, 고등어, 꽁치가 다 다른 불 조절을 요하고 그렇게 신경 쓴 불 맛이 더해져야 새벽부터 움직인 정성이 빛을 발하는 맛으로 완성된다. 연탄불에 올린 석쇠, 그 위에 누워있는 생선을 바라보는 주인장의 눈빛은 마운드를 장악하고 있는 투수의 비장함마저 감돈다.

아무리 단골이 많고, 그 사람들이 밥 한 끼 잘 먹고 인사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지만 환갑을 넘긴 나이에 여전히 생선을 굽는다는 것이 힘들지는 않을까?

"가끔 힘들 때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이 놀면 못써요."

그렇다면 분점이나 어디 번듯한 도시마다 체인점을 줄 생각은 안 했는지 물으니, 그간 제의는 수없이 받았지만 한 번도 동대문을 벗어날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분점을 내면 내가 일일이 봐줘야 하는데, 그러면 여기 맛이 흐트러지지요. 맛은 남의 손에 턱 맡겨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 손으로 굽고, 제 손으로 간을 봐야 남한테 권하지요."

이렇게 센 고집만큼 거래하는 생선 업자도 그 세월 동안 딱 두 군데라고. 세월을 겪으며 쌓은 관계만큼 맛있는 생선을 먼저 공급 받는 편이다. 이렇게 많은 생선을 구워도 생선을 보면 식욕이 도는지 여쭙자 아침에 꽁치 한 마리, 저녁에는 고등어를 주로 드신단다. 그래서인지 주인장의 피부가 건강해 보인다.

"먹고 살아야 해서 하는 일이지만, 사람은 즐거워야 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좋았고, 그렇게 창조한 생선 맛과 정으로 매일 매일이 즐겁다 말하는 김영창 사장의 생선은 동대문 사람들이 다시 힘을 내서 하루를 살게 만들어주는 '소울푸드(soul food)'다. 그 소울푸드를 먹고 힘을 낸 상인들이 만들어가는 아침이 대한민국의 원동력이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atgamsa@gmail.com

사진=임우석 imwoo5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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