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죄죄한 머리, 소매 없는 러닝 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닦지 않은 구두, 남의 시선이나 기분은 의식하지 않는 태도, 고성과 웃음이 뒤섞이며 계속되는 대화…. 10여년 전, 유럽 여행 도중 만난 일단의 중국 관광객들의 행태는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일부 유럽 언론들은 중국인들이 그런 모습으로 유명 관광지를 휩쓸고 지나가는 현상을 '메뚜기떼의 공습'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아냥은 곧 자취를 감췄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인들은 일본ㆍ한국인을 제치고 유럽 명품 시장의 최대 고객이 됐다. 중국인을 대하는 유럽인들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서울 명동에서 만나는 중국 관광객들의 차림도 변했다. '졸부'티는 사라졌고, 이젠 세련미까지 느껴지는 이들이 상당수다. 명품 의류와 귀금속으로 치장하고 면세점과 백화점에서 구입한 명품 쇼핑백을 들고 활보한다. 2009년 한 해동안 해외 여행을 즐긴 중국인들은 약 5,000만 명. 이들이 세계 곳곳에 뿌린 돈만 420억 달러(약 48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더구나 중국인 해외 여행객의 씀씀이는 매년 20~30% 수준의 지속적인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니, 세계 각국이 그들의 구매력을 보고 유치전을 펴는 것은 당연하다.
■ 해외 여행 초창기, 우리도 4박 5일에 서너 국가를 도는 식의 '깃발 여행'을 주로 떠났다. 그러나 요즘은 개별국 여행, 테마 여행, 레저 여행, 이색 체험 여행 등으로 수요가 다양해졌다. 인터넷 등으로 여행 정보를 쉽게 접하게 되고 경험도 축적되면서 여행에 관한 안목과 관심이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중국인들도 마찬가지다. 한류 바람을 타고 잠깐 한국에 들러 한국 음식과 쇼핑을 즐긴 뒤 돌아가는 식의 여행 패턴이 언제까지 그들의 발길을 잡을 수 있을까.'큰 손'중국인의 수요 변화를 반영하는 특화한 프로그램이 없다면 특수는 신기루가 될 것이다.
■ 중국 관광객 한 명이 서울에서 외국인 관광객 평균보다 32%나 많은 2,203달러를 쓴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들의 가장 큰 불편이 입국 시 비자 발급 등 까다로운 출입국 절차라고 한다. 무비자 방문이 실현되면 중국 관광객이 연간 120만명에서 500만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니 중국 정부와의 협상에 속도를 내야 한다. 더불어 싸구려 관광 상품을 퇴출해 한국 관광의 이미지를 고급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영어를 쓰는 외국인을 대할 때와 달리 중국인 등 아시아인에게 유독 불친절한 후진적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자존심 센 유럽인들이 괜히 머리를 숙인 게 아니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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