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융합 기술을 개발했다"는 1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발표는 '뜬금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정부 당국자 입에서 "터무니 없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북한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글로컬협력연구센터 소장은 "핵융합을 하려면 고온ㆍ고압에서 핵폭탄을 터뜨릴 정도의 메가톤급 힘이 필요한데 북한의 열악한 제반 시설을 감안하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1995년 기술개발에 착수한 우리나라조차 2008년에야 초기 단계의 플라스마(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고온ㆍ고압 상태)를 발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신재인 한국핵융합협의회장도 "고온ㆍ고압 환경이 아니어도 미미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지만 우연에 가까울 정도로 확률이 낮다"고 말했다. 북한이 실험실 수준의 소규모 핵융합 반응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상용화나 핵무기 개발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 시점에 핵융합 카드를 들고 나왔을까. 북핵 문제를 둘러싼 일련의 흐름 속에 해답이 있다.
미국은 지난달 6일 발표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통해 북한에 대한 핵 공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는 2012년 제2차 정상회의 개최지로 서울을 확정하는 등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압박을 계속 해왔다.
이에 북한은 지난달 21일 외무성 비망록에서 "핵무기를 필요 이상으로 과잉 생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핵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핵의 평화적 이용에 동참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미국이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이 문제를 북핵 6자회담 재개와 연계하는 등 한층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서자, "추가적인 핵 카드를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내놓으면서 핵을 통한 '벼랑 끝 외교'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센터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방중 당시 6자회담 재개에 협력할 의사를 내비쳤음에도 미국은 '선 천안함 진상 규명'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며 "이는 곧 자신들 뜻대로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핵 개발을 지속하겠다는 엄포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대내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제사회에 대한 경고 차원이라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직접 발표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북한은 굳이 노동신문을 인용하는 형식을 취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김 위원장 방중과 맞물려 주민들에게 체제 우월성을 어필하기 위한 추가 조치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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