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재 털어 '여인박물관' 짓는 무형문화재 신상순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재 털어 '여인박물관' 짓는 무형문화재 신상순씨

입력
2010.05.12 13:39
0 0

"옛 아낙네의 손끝에서 나온 규방 작품에는 그들의 정서와 한(恨)이 서려 있습니다. 이 전통과 정신은 계승해야 할 우리의 자산입니다."

10일 오후 만난 경기 무형문화재 25호 민속 자수장인 신상순(79) 장인은 곱게 차려 입은 한복만큼이나 단아한 한국 여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국 자수 작품에서 묻어나는 한국 혼(魂)을 설명할 때는 80평생 고집스레 지켜온 전통의 명맥을 보전해야 한다는 의지가 묻어 나왔다.

신 장인은 요즘 일생의 큰 매듭을 짓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이 그간 손수 만든 자수 작품들과 60여년 간 수집한 규방 소품들을 전시할 여인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사재를 털어 경기 구리시 교문동 일대 3,100여 평 부지도 마련했다. 지난해 박물관 건축허가를 받고 공사에 들어가 올해 12월이면 완공된다.

본관동, 전통 혼례동 등 7개 한옥 동으로 구성되는 여인박물관에는 신 장인이 손수 제작한 자수 및 매듭 작품을 비롯해 그가 평생 전국 골동품점에서 수집한 베틀, 실틀과 같은 길쌈 용품, 염색 작품, 장신구 등 옛 양반가문의 안방에서 썼던 각종 규방 공예품 5,000여 점이 전시된다.

신 장인이 명주실을 한 올씩 놓아서 6개월여 간 만든 '4층 책장'이나 '5층 반닫이 장' 이 5,000만원, 비녀 한 점이 2,500만원을 호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박물관에 전시될 작품들은 가격을 매기기 힘들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여인 박물관 설립은 오랫동안 준비한 대사입니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자수ㆍ규방 박물관을 만들어 내 우리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릴 계획입니다."

신 장인이 한국 자수와 인연을 맺은 것은 마산여학교 2학년(현 마산여중 2학년)때. "가사 시간이었을 거에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실습을 하는데 실이 손에 '착' 감기더라구요. 이후 자수전에 나가 대상을 타면서 한국 자수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이 맺어졌지요."

신 장인은 1971년에 자수원 화린 공방을 설립하고, 76년 한국일보사가 주최하는 '명장 작가'로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자수 전통 잇기에 몰입했다. 개인 자수전만 13차례 치렀고, 각종 수상 실적과 초대전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문하생도 수제자 격인 임희영씨를 비롯해 수 십여 명에 이른다. 98년에는 경기도 무형문화제 '민속 자수장'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하지만 옛 여인네들의 소품을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바느질 작품이나 옛날 물건들을 모은다니까 처음에는 남편과 아이들은 탐탁해하지 않아 했어요. 옛 것이라 언뜻 보면 볼품은 없는데 가격은 아주 비쌌거든요. 우리 전통의 가치를 알리고 설득하니 제 마음을 알아주더라구요."

그는 여전히 전통 잇기에 박한 요즘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요즘 중ㆍ고교 과정에 가사 과목이 대부분 없어져 전통 자수가 홀대 받고 있어요. 오히려 외국에서 한국 자수에 대한 연구를 더 많이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라고 털어놨다.

그는 '여인 박물관'을 우리 고유 정신과 혼을 잇고 계승하는 교육의 장이자 한류 문화의 상징으로 만들 계획이다. 규방 작품 전시에서 자수 및 다례 교육, 전통 혼례 개최, 한류 문화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신 장인은 "한국의 규방 작품을 '여인네들의 소품'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됩니다. 국가건 개인이건 누군가는 꼭 지켜야 할 소중한 우리의 정신이자 혼입니다. 우리 아낙네들의 손끝 예술을 꿋꿋이 지켜 나가겠습니다"고 다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