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발 이 무서운 병 이름을 바꿔주세요."
정신분열병 환자가 최근 필자가 잘 아는 정신과 의사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한 말이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정신분열병의 병명개정과 편견해소를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권준수 대한정신분열병학회장(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이 2008년 병보다 병 이름이 더 무서운 질환이라며 개정 필요성을 역설해 정신분열병병명개정위원회를 만들고 노력한 결과가 이제야 나와 국민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Schizophrenia(정신분열병)은 1908년 스위스의 유겐 브?러(Eugen Bleuler)가 처음 명명하였다. 당시 그는 dementia praecox(조발성 치매)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던 이 병이 회복되기도 하고, 심각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름을 새로 지어 편견을 없애고 개념을 재정립하려고 그리스어를 사용해 schizophrenia라는 용어을 만들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schizophrenia의 그리스적 의미를 글자그대로 해석해 '정신분열병'으로 번역 사용했고, 우리나라에도 이를 쓰고 있다.
정신분열병(精神分裂病)은 말 그대로 해석하면 마음이 찢어지고 갈라진 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만 보면 인격이 와해되고 극도로 퇴행된 행동양상을 보이게 되는 무서운 질병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이는 환자와 가족 마음에 주홍글씨로 새겨져 큰 고통을 주고 있다. 상대를 비하하고 비난하기 위해 질병과 상관없이 은유적으로 정신분열병이 사용되기도 한다. 일본은 이런 폐해를 인정해 2002년 통합실조증(統合失調症)으로 병명을 바꿨다.
정신분열병은 의학 발달로 베일이 점점 벗겨지면서 치료나 관리가 가능해졌다. 더 이상 조발성 치매가 아니며 마음이 찢어지는 병도 아니다. 의사, 변호사, 선생님 등 전문가로서 충실히 살아가는 많은 환자가 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의 실제 주인공으로 정신분열병 환자이며,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많은 의사가 그 이름이 갖는 부정적 편견으로 환자와 가족에게 병명 알리기를 꺼린다. 또한 환자는 비슷한 이유로 조기 치료받을 기회를 놓치곤 한다.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음에도 병명이나 질환에 대한 편견으로 최적의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병명개정위원회는 조현(調絃), 사고, 통합의 세 핵심어군을 새로운 명칭 후보로 제안하면서, 조현을 가장 적합한 후보로 추천했다. 조현은 '현악기 줄을 고르다'라는 의미다. 신경계나 정신이 제대로 튜닝 안돼 마음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병이라는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서양에서는 schizophrenia 라는 병명 자체에서 오는 편견은 거의 없다. 그리스어를 사용한 난해한 신조어이기 때문이다. 조현이라는 병명도 어렵다. 따라서 병명에서 오는 편견은 없을 것이다. 정신분열병의 병명이 개정돼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혜택이 제공되는 날이 곧 다가오기를 바란다.
이유상 용인정신병원 정신과 과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