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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가수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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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가수와 시인

입력
2010.05.12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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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무 살이었다. 우리는 긴 머리카락을 날리던 장발족이었다. 친구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나는 그 옆에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연습장에 연필로 시를 썼다. 우리는 늘 같이 뒹굴었다. 우리의 고향은 인구 10만쯤 되는 작은 도시였다. 그때 우리가 같이 꾸었던 꿈은 '불확실한 미래'였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 가수가 되고 시인이 되는 일이 '백일몽'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열정만큼은 불처럼 뜨거웠다. 친구가 나가는 노래자랑마다 나는 박수부대가 되어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하는 아마추어 시낭송회에서 아마추어 가수인 친구가 기타 반주를 하거나 우정의 노래를 불렀다.

'목신의 오후'란 이름을 가진 작은 테이블 2개와 더 작은 의자가 8개뿐인 손바닥만한 다방이 우리들의 유일한 공연무대였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관객이었다. 며칠 전 친구의 공연이 산사에서 있었다. 나는 우정출연으로 함께 했다. 저녁이 내려앉는 산사에서 우리는 가수와 시인으로 만났다.

이미 80년대 3대 언더그라운드 포크가수로 대접받던 친구. 기타 때문에 늘 손톱을 기르던 친구. 긴 머리카락과 긴 수염이 트레이드마크였던 친구. 그날, 우리는 둘 다 짧고 단정한 머리카락을 하고 생애 가장 단정한 모습으로 만나 무대에 올랐다. 분명한 건 우리가 꿈꾸던 가수와 시인이 되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늙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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