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주은(31)씨는 지난해 4월 병원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봉사단체 '포유뮤직'을 만들었다. 지난해 사고로 한 달여간 입원했던 엄마가 병원에서 열린 음악회에 힘을 얻는 것을 보고 결심한 것. 포유뮤직에 가입한 음악인은 이씨를 포함해 총 168명, 이들은 매주 한번씩 서울지역 병원 다섯 곳에서 무료 음악회를 연다.
#힙합가수지망생 김별(23)씨는 무대가 필요했다. 마침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건국대병원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던 엄마로부터 '피아노를 칠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연주를 자청했다. 이후 김씨는 한 달에 두어 번 환자들을 위한 무료 연주를 펼치며 그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12일 건국대병원 지하1층 라운지에서 1,000번째 '정오의 음악회'가 열렸다. 이날 공연은 2005년 9월 대학생 이동규(23)씨의 무대를 시작으로 포유뮤직, 音이온,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이플쉬즈, 프로골퍼 최나연, 외국인학교 음악강사 스티브 더스트 등 각양각색의 200여 팀 400여명이 매일 정오 같은 자리에서 공연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연주 봉사자들의 참가계기는 제 각각이다. 그저 피아노를 치고 싶어서 봉사에 응한 이도 있었고, 몸이 아픈 가족에게 작은 희망을 선사하고자 봉사를 시작한 이도 있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유진(22)씨는 "나는 음악을 통해 즐거움을 찾고 있는데 환자들에게도 음악을 통해 감동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주은씨는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있다 보니 심신이 지친 사람들에게 해 줄 뭔가를 자연스레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시작은 달랐지만 이제 목표는 같다. 환자들뿐 아니라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 1회 무대에 올랐던 이동규씨는 "병원에 설치된 그랜드피아노에 마음이 쏠려 무턱대고 시작하게 됐지만 음악을 통해 언어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서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주은씨는 "거의 매일 수술대에 오르는 뇌성마비 아이를 둔 부모가 '아이가 음악을 듣고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웃었다'는 얘기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다"고 가슴 벅찬 순간을 전했다. 그는 "예전엔 돈 받고 연주하고, 개인연주회 하는데 여념이 없었지만, 봉사를 하면서 좋은 일이 계속 생기니깐 더 열정을 쏟게 됐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매번 연주회마다 환자 보호자 등 100여명이 몰린다.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면 가던 이들은 걸음을 멈추고 떼를 쓰던 아이는 울음을 뚝 그친다. 너나 할 것 없이 눈을 지그시 감고, 벽에 몸을 기댄 채 마음을 달랜다.
3년째 이 병원을 찾는다는 김연순(78)씨는 "며칠 전에 한 암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인데, 음악도 모르는 무지렁이지만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초조한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다"고 했다. 그는 음악을 듣기 위해 예약시간 3시간 전부터 병원에 왔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5세 딸을 키우는 이선미(37)씨도 음악회를 찾아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거의 매일 병원에 있다 보니 음악회는 가본 적이 없다"며 "경쾌한 피아노 음률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살짝 웃었다.
건국대병원의 정오의 음악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며, 이미 7월까지 예약이 다 차있을 정도로 연주 봉사자들의 발길도 잇따르고 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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